숲의 화재

글/시 2017. 3. 16. 21:56 |

숲의 화재



나무들이 거대한 기둥을 세운

태초의 사원과 그 깊은 정령들의 냄새에

우리는 불을 놓았노라


늙은 사원은 광기처럼 불타고

정령의 눈, 코, 길쭉한 웃음

따위를 가진 짐승들은

자유롭게 타 죽어갔다


오! 내 옆, 보이지 않는 동행의

싱싱한 어깨를 나는 껴안으며

그의 공포에 기름을 발랐다


사람이여, 부디 내가 누구인지 묻지를 말라

나는 매듭지어진 고리와 같아

언젠가 풀릴 매듭이며, 어쩌면

이미 풀렸을 지도 모르이


불길은 새로 지어지는 사원처럼 드높이 쌓인다

재와 신록의 냄새가 난다! 나는

동행에게 묻는다: 무슨 냄새가 나느냐고

<불꽃>! 윤기가 도는 입술을 그는 떨었다


아하, 나는 웃었다. 정령들의 탄 재가

소용돌이치며 불꽃의 저편―천상으로

거인의 날개를 편다

파아란 노목들 관념이 되어

이제 내 심장에 잎사귀 핀다


동행이여! 불꽃에, 광란의 화재를 끌어안고 큰 숨을 쉬라

콸콸 쏟아지는 성화의 열기와

새하얀 죽음이

영령처럼 네 폐를 채우리라.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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