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생각

외로움과 계절에 대하여.

Lim_ 2011. 11. 24. 02:13
 겨울이 왔다. 빛이 투명해지고 공기에서 북쪽의 어떤 선명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나는 태양에 점령당한 땅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다. 내 영혼은 언제나 빛을 향하여 머리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빛에 대한 이미지가 부족해지는 일은 없다. 나는 언제나 눈이 부시다. 나의 촉각들은 늪의 뻘을 느낀다. 내 심장이 담겨있는 새까만 늪을 나는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의 감정과 고독은 내가 어디에 파묻혀 있는지 똑똑히 알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혼자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직 죽음을 논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삶의 그 어느 순간도 죽음을 논하기에 이른 때일 수는 없다. 나는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 오래되고 깊은 외로움은 나의 인격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대단한 것이다. 늙은 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들에게 고독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홀로 살아와서 인생을 누군가와 나누는 방법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억울하고 슬픈 감정들. 그러나 더는 그러한 기억에 상관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모든 것이 다 잘되어 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최근의 나는 이따금 조증에 걸린 사람처럼 자신만만하여 인생을 낙관하는 때가 있다. 내가 쉽게 절망하는 만큼이나 쉽게 만족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부나 영광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극도로 닫힌 인간이다. 내가 기쁨을 느끼는 데에 필요한 것은 외부의 조건도 아니었다. 무언가를 소유하게 되는 일도 아니었다. 모든 것이 주관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었다. 나는 미치광이여도 괜찮은 것이었던 것이다. 연대에 대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것은 꿈을 꾸는 자의 욕망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꿈 속에서도 충분히 충족될 수 있다는 뜻이다.
 얼마 전에 나쁜 일이 있었다. 나의 충동성과 불행에 대한 억하심정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여전히 원한감정으로 가득한 슬픈 짐승이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 와중에도 과거에 발이 묶여있다. 그러나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해결할 수 없는 과거를 어떻게 해결해야 좋단 말인가? 잊거나 둔감해지는 방법밖에 없다. 스스로와 타협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와의 절연. 관계자의 죽음. 완전히 망각하는 방법. 이상한 말이지만, 나를 과거의 나로 인지하는 시각들만 사라지만 과거의 나도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영원히 망각의 땅 속에 묻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꼬리를 잘라낸 도마뱀처럼 살아갈 수 있다.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증오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나를 슬프게 만든다. 그러나 나는 아무와도 손을 잡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시간이 흐르고 나면, 모든 것이 나의 선택권 밑으로 들어오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지드의 사생아. 모든 사람이 원하기만 한다면 스스로 사생아가 될 수 있다. 부모라는 이름의 전통(전통이라는 이름의 부모)을 살해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러면 완전히 스스로의 책임만으로 이루어진 자유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모두 시간에 묶여 죽는다. 홀로 살아남은 사람은 죽은 인간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다. 생명은 곧 가능성이다.
 계속해서 잠을 자고 계속해서 꿈을 꾼다. 엄청난 양의 꿈들. 엄청난 양의 환상들. 나는 살아가는 일에서 쾌락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잠을 잔다. 사회적으로 아무런 지위도 갖지 못했다는 것은 완전히 사회적이지 않은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는 환상에 낭비되는 시간들 속에서 방종을 즐긴다. 오늘과 내일의 경계선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다. 내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겨울에: 나는 삶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파괴와 포기. 그러나 나는 삶을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이라곤 오직 삶 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러하다. 누가 영원을 말하는가? 인간은 죽음이 놓여진 삶 밖에 가질 수 없다. 오해하지 말라. 우리가 맛 볼 수 있는 과실은 영원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