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시

별 볼 일 없고 끝도 없던 분노를 구두처럼 신고서 얼굴은 웃고서

Lim_ 2025. 4. 1. 17:18

별 볼 일 없고 끝도 없던 분노를 구두처럼 신고서 얼굴은 웃고서


 잭
 잭 영감이 바텐더를 하는
 잭스 바
 거기서 나는
 아주 늙고 노년이 보장된
 유대인 노인과
 자주 마주쳤다
 오후 다섯 시부터 계속
 나는 취해있었고
 그는 이틀에 한 번 정도
 밤이 깊으면 나타나
 인사하며 옆자리에 앉아
 밀러를 시켰다.

 나는 항상 웃고 있었는데
 언제나 화가
 터지기 직전의 가스탱크처럼
 치밀어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한국
 남쪽, 한국, 남한에서는,
 벙어리라는 단어도
 못 쓴다니까요
 벙어리 장갑도……이런
 젠장, 이걸 어떻게
 영어로 설명하지
 벙어리의 신식
 표준어가 뭐더라?

 이 따위
 두서없는 소리를
 아무 때고 끊임없이
 길고 강인하고 끈질기고 소용없이
 늘어놓았다
 노인은,
 유대인이고
 짧은 머리가 하얗고
 밀러 생맥주를 마시며
 항상 웃고 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침마다 내 몸은
 술과 이슬로 흠뻑 젖어
 남의 집 소파에
 쓰러져있었다 매일
 기억할 수 없는
 새 상처를 갖고.

 머리가 깨끗하게 벗겨진
 잭 영감은
 내게 더블샷 럼이나
 잭콕을 파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주크박스에서 음악을 틀고
 일회성 친구들에게 싸구려
 술을 사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항상
 웃고 있었다.

 잭스 바 손님들은 모두
 날 보면 웃었다 나도
 그들 모두에게
 항상
 웃었다.

 귀국하고, 떠나고, 또 귀국하고, 또 떠나고, 또 어딘가에서
 또 만신창이로 쓰러져 잊어버리고
 기억 못 할 상처들만 어리둥절하게
 켜켜이 새기고

 인디애나도 텍사스도 아칸소도 캘리포니아도 네팔도 인도도 중국도 일본도 아무 곳도
 아닌, 오늘, 부모님 집
 내가 점유한
 방에서
 바닥에서

 흰 머리를 줍고
 짧은 머리가 희던 유대인
 항상 웃던
 노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손등의 담배빵 같은 흉터도
 오른팔 화상 자국도
 기억하지 못하고

 어딜 다녀왔는지도.

 그러나 잭 영감의 은제 안경테
 잭콕 잔에 묻은 폐유
 쓰러진 잡초밭에 내리던 우박
 들개 냄새가 나는 소파
 언제나 열에 들떠
 항상 웃고 다니던
 표정.

 더는 들이키지 않게 된
 망각과 분노를 모두.

 노인이 밀러를 마시며
 성공한
 스타디움 사업을 떠들고
 내가
 남한의 문학 시장판을
 떠들었던 것을
 모두

 기억하고
 날 보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