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 일 없고 끝도 없던 분노를 구두처럼 신고서 얼굴은 웃고서
별 볼 일 없고 끝도 없던 분노를 구두처럼 신고서 얼굴은 웃고서
잭
잭 영감이 바텐더를 하는
잭스 바
거기서 나는
아주 늙고 노년이 보장된
유대인 노인과
자주 마주쳤다
오후 다섯 시부터 계속
나는 취해있었고
그는 이틀에 한 번 정도
밤이 깊으면 나타나
인사하며 옆자리에 앉아
밀러를 시켰다.
나는 항상 웃고 있었는데
언제나 화가
터지기 직전의 가스탱크처럼
치밀어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한국
남쪽, 한국, 남한에서는,
벙어리라는 단어도
못 쓴다니까요
벙어리 장갑도……이런
젠장, 이걸 어떻게
영어로 설명하지
벙어리의 신식
표준어가 뭐더라?
이 따위
두서없는 소리를
아무 때고 끊임없이
길고 강인하고 끈질기고 소용없이
늘어놓았다
노인은,
유대인이고
짧은 머리가 하얗고
밀러 생맥주를 마시며
항상 웃고 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침마다 내 몸은
술과 이슬로 흠뻑 젖어
남의 집 소파에
쓰러져있었다 매일
기억할 수 없는
새 상처를 갖고.
머리가 깨끗하게 벗겨진
잭 영감은
내게 더블샷 럼이나
잭콕을 파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주크박스에서 음악을 틀고
일회성 친구들에게 싸구려
술을 사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항상
웃고 있었다.
잭스 바 손님들은 모두
날 보면 웃었다 나도
그들 모두에게
항상
웃었다.
귀국하고, 떠나고, 또 귀국하고, 또 떠나고, 또 어딘가에서
또 만신창이로 쓰러져 잊어버리고
기억 못 할 상처들만 어리둥절하게
켜켜이 새기고
인디애나도 텍사스도 아칸소도 캘리포니아도 네팔도 인도도 중국도 일본도 아무 곳도
아닌, 오늘, 부모님 집의
내가 점유한
방에서
바닥에서
흰 머리를 줍고
짧은 머리가 희던 유대인
항상 웃던
노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손등의 담배빵 같은 흉터도
오른팔 화상 자국도
기억하지 못하고
어딜 다녀왔는지도.
그러나 잭 영감의 은제 안경테
잭콕 잔에 묻은 폐유
쓰러진 잡초밭에 내리던 우박
들개 냄새가 나는 소파
언제나 열에 들떠
항상 웃고 다니던
표정.
더는 들이키지 않게 된
망각과 분노를 모두.
노인이 밀러를 마시며
성공한
스타디움 사업을 떠들고
내가
남한의 문학 시장판을
떠들었던 것을
모두
기억하고
날 보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