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생각

정신나간 행렬 사이로.

Lim_ 2010. 7. 21. 12:08
 확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열기가 도로 위를 미친듯이 내달린다. 저 열기도 언젠가는 사그라들 것이다. 그리고서는 떨어지는 낙엽들도 곧 사그라들 것이며, 녹아 없어지는 눈이 내린 뒤에는 말라 시들어버릴 꽃들이 필 것이다. 이렇듯 확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확신은 있다. 사실 확신은 있을 수 밖에 없다. 나도 썩고 부스러질 것이다. 썩고 부스러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해야하는가? 아직 죽어본 일은 없지만 죽음은 보편적 진실이기는 하다. 언젠가 모든 것이 산산히 흩어질 것이니 나는 만족하고 살아가야하는가. 과정은? 과정은 어떻게 되나. 내가 목적론자라면 아마도 과정은 모두 끝나기 때문에 무심히 지나쳐도 상관 없는 현상의 표면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목적론자가 될 수 있을 만큼 무언가를 긍정하지 못한다. 나는 목적마저도 부정한다. 그래,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 별다른 지침도 없이 무작정 손에 쥐게 된 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광기에게 잡아먹히지 않게 하기 위한 약들도 있다. 과정. 과정이라니! 도대체 과정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이미 확신을 가졌다. 나는 죽는다. 그렇다면 나는 쾌락주의자가 되어야 하나? 아니면 선험적 성질로 말미암아 퇴폐주의자가 되어야 하나? 궁극적으로 회의하기만 할 뿐인 나는 결코 쾌락주의자는 되지 못하리라. 나는 쾌락이라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어쩌면 내가 거세당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유야 무엇이든간에, 나는 우울과 공허에 빠져 인중까지 허무에 잠겨버렸고 무엇을 하든 불신과 무기력으로만 대응한다. 다소는 열정적이거나 열광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은 그것조차도 허무에 대한 열광과 열정인 것이다. 최근에는 글을 쓸 수가 없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모든 부조리한 위협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작게 웅크리고 있다. 나는 자주 웃는다. 나는 나의 웃음을 증오한다. 그것은 역겹고 기만적이다. 보편에게 반항하기 위해 내 육체적 진실들과 화해하기를 거부했지만 나의 근육과 뼈들은 피조차 나지 않는 작은 흠집에도 고함을 질러대고 끊임없이 먹을 것을 탐한다. 여름이다. 여름이다.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무자비한 여름이다. 더위와 습기가 모든 쓰라린 상처들을 곪아 터지게 한다. 골목골목마다 악취가 나는 고름덩어리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의 희희낙락한 살갗을 보는 것이 공포스럽다. 우리는 병들었나. 우리는 병들었는가.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삶을 긍정하는, 치열하면서도 무력하게 생존을 갈망하는 그들의 눈과 마주치는 것이 소름끼친다. 오늘은 여름이다. 열기가 도로 위를 미친듯이 내달린다. 나는 내 이상성을 증명하러 나간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간다. 삶이여. 삶이여. 삶이여. 나는 무언가를 사랑하고 싶다. 파열하고 싶다. 산산조각으로. 공포스럽다. 종말과 마주치고 싶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 고독하다. 당연한 사실이다. 사실 곧 무언가를 다시 쓰기 시작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불안은 이성과 악수하지 못한다. 밖으로. 자살자들이 뛰어다니는 밖으로. 나도 쏟아지는 폭염 속에서 무언가와 맞닥뜨려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