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병자의 하루
어느 병자의 하루
어느 현대인의 하루
어느 반항인의 하루
어느 범죄자의 하루
어느 연극배우의 하루
어느 불특정인의 하루
어느 하루
언제든지 세상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말을 내뱉을 수 있게 만드는 그 작은 기계는 그의 외로움에 가장 효과적으로 불을 붙였다. 그는 매일같이 가슴 속에서 들끓어 오르는 소통에 대한 열망과 표현에 대한 미치광이 같은 욕망을, 이전까지는 펄떡거리는 관자놀이를 압박하며 가라앉힐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 그는 그 기계장치를 손에 쥐고 통화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날도 그는 창문틈새로 들어온 햇빛이 눈꺼풀을 가차 없이 찔러대는 시간이 돼서야 눈을 떴다. 그는 자기 머리맡에 놓여있던 휴대폰을 집어 들고 시간을 확인했다. 액정화면의 디지털시계는 1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12시 30분. 그는 통화버튼을 눌러 통화기록을 불러온 뒤 가장 최근에 기록을 남긴 상대에게―그게 누구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전화를 걸었다. 규칙적인 전자음으로 이루어진 신호가 가고, 상대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자살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야. 네? 그리고 그는 비몽사몽간에 전화를 끊었다.
해가 중천이었다. 그는 잠이 덜 깬 정신으로 천장을 쳐다보았다. 커다랗고 넓적한 물고기 한 마리가 뇌 속을 헤집으며 헤엄치는 것이 느껴졌다. 물고기는 뇌의 주름 사이에서 몸부림치며 매끄럽고 관능적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그는 그것의 지느러미가 대뇌피질에 밀도 높은 물결을 일으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고, 시야는 그 생선의 움직임을 따라 어그러졌다. 태양. 태양빛이 천장에 발린 벽지를 하얗게 빛나게 하고 있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안구를 압박하며 천천히 일어섰다. 커다랗고 넓적한 물고기의 비늘 사이로 스며드는 태양광선. 덮고 있던 이불을 걷자 무방비한 몸에 한기가 몰려들었다. 그는 몸을 움찔하며 무어라고 입속말을 중얼대더니 벽을 짚고 일어섰다. 한손에는 여전히 휴대폰이 들려있었다.
남자는 눈꺼풀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굉장히 힘겹다는 듯, 느린 동작으로 두어 번 눈을 깜빡였다. 새삼 어지간히 채광이 좋은 방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거실로 나섰다. 방바닥이 냉골이었다.
거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는 어느새 12시 4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내일이 올 때까지 11시간하고도 18분이 남아있다. 어제 같은 내일. 오늘 같은 내일. 남자는 여전히 손에 들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어제 같은 내일. 오늘 같은 내일. 세수가 하고 싶다. 그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바닥을 덮고 있는 파란 타일은 밤새 보일러를 틀어놓지 않은 방보다도 훨씬 차가웠다. 파란 타일은 발바닥이 아플 정도로 차가웠다. 지금은 겨울인데, 지금은 한겨울인데 넌 자해를 즐기는군. 비참한 나르시시스트 같으니라고. 세면대 앞에 서자 거울이 정면에서 그를 반기며 그렇게 말했다.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도꼭지를 돌렸다. 파란 타일만큼이나 시리고 투명한 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세수를 했다. 거울은 더 이상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얼굴에 찬물을 끼얹자 남아있던 졸음도 달아났다. 그러나 피로는 사라지지도 가벼워지지도 않았다. 그의 피로는 몹시도 오래되고 무거운 것이었다. 그것은 잘 때나 깨어있을 때나, 아침에나 저녁에나 끈질기게 남자의 눈 안쪽 깊은 곳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있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거울 속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곧 물기를 닦고 나갔다. 그리고는 덜 마른 손으로 전화기를 주워들고 거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의 흰자에 박힌 실핏줄들이 따끔거렸다. 거실창문을 통해 들어온, 칼날 같은 한낮의, 한겨울의 태양광선이 주변의 공기를 투명하면서도 선명하게 꿰뚫고 있었다. 남자의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들도 마찬가지로 겨울 해를 따라 깨끗하고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대기는 깨진 유리처럼 자극적이고 무결했다. 그리고 그런 살풍경 속에서 남자의 시선과 정신만이 혼탁하게 어그러져있었다. 시간은 벌써 한시를 넘어 있었다.
곧이어 남자는 쥐고 있던 휴대폰의 뚜껑을 열더니 조심스럽게 그것의 액정화면을 검지 끝으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러다가 마침내 무슨 번호를 누르려는 듯 다이얼 위로 손가락을 옮기더니, 얼마간 망설이다 결국에는 그 어떤 버튼도 누르지 않고 휴대폰의 송화기를 자기 입 앞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여보세요, 밖은 추운가요? 햇볕이 얼마나 차갑습니까? 난 지금 굉장히 머리가 아파요. 밖으로 나가면 머리가 덜 아프게 될까요? 휴대폰의 대기화면을 밝히고 있던 조명이 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무슨 은밀한 비밀이라도 얘기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속삭였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오늘이 예정일인건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서……
갑자기 말을 멈춘 남자는 휴대폰의 뚜껑을 닫고 떨어트리듯이 그것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돌연 노기가 섞인 목소리로, 음절 하나하나를 끊어 재차 말하는 것이다. 굉장히 머리가 아프다. 굉장히.
시계는 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남자는 선반 위에 놓여있던 약병에서 알약을 한 알 꺼내먹었다. 그러고는 오른손에 들려있는, 물이 반 정도 담긴 투명한 유리컵을 무심하게 좌우로 살짝 흔들더니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다시 약병을 집어 들고 하얗게 정제된 알약 두 개를 물과 함께 삼켰다. 그는 약병을 선반위에 올려놓고 이제는 텅 빈 유리컵을 무표정하게 응시하더니 이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내 정신은 혼탁한가? 내 정신은 혼탁한가? 내 정신은 혼탁한가? 내 정신은 명징하지 않은가?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하여? 약. 내 정신을 재구성하는 화학물질은 어떤 의미로 둘러싸여있나? 너는 자포자기에 빠진 병자다. 그리고 유리컵의 표면에 비친 반투명한 입이 지껄이기 시작했다. 너는 두통 때문에 약을 먹는 게 아니지. 너는 자해를 즐기는군. 그것은 이제 휴대폰의 송화기를 입에 가져다댄 채 계속해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통증은 증명이야. 나는 약을 처먹거나 보일러가 꺼진 방안에서 겨울을 보내거나 둘 중 하나만을 골라야한다. 내 정신은 혼탁하다. 새까맣게 가라앉은 미련덩어리. 어설픈 퇴폐주의자. 너는 추위처럼 선명하고 고통처럼 날카로운 순수를 꿈꾼다. 그러나 또한 너는 유물론과 신경학에게 네 몸을 바치려한다. 너는 눌어붙은 살덩어리와 정신을 한데 묶어 뒤섞고 싶어 한다. 약으로. 현대적으로 깎여나가고 병리학의 자궁에서 태어난 인공의 진실로. 스스로의 뇌를 찢어발겨라. 명징에의 욕구를 강간하고 그 속에 하얗게 정제된 정액을 흘려 넣어라. 무감각한 정액을.
그는 휴대폰을 닫고 유리컵 속의 선홍색 입술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컵의 외면은 태양빛을 받아 희게 번쩍거리고 있었다. 흰색 알약. 반복되는 수사. 남자는 개수대 위에 그것을 올려놓고 시계를 보았다. 두 시. 그는 외출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향했다.
머리가 어찔할 정도로 공격적인 태양빛에 남자는 잠시 넋을 놓고 있었다. 공기는 얼음장 같았고 땅에는 밟히고 녹아 지저분하게 굳은 눈들이 쌓여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빛은 마치 날카로운 창처럼 온천지에 자신의 얇고 뾰족한 촉을 박아 넣는 것이었다. 남자는 난자된 몸과 머리를 붙잡고 그제야 걷기 시작했다. 태어난 것이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주머니속의 휴대폰을 손끝으로 문지르며 그가 중얼댔다.
그는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그의 집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역까지 도보로 20분이 걸리는 위치에 있었다. 채광이 좋고 전철역까지는 걸어서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으며 거실과 방, 그리고 화장실이 있는 집. 남자는 항상 그 집이 자신에게는 너무 과분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집을 팔고 더 어둡고 후질구레한, 좁고 불편한 집으로 이사를 가진 않았다. 그저 그런 생각을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두어 번 조용하게 지껄였을 뿐이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그는 행동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라고 해서 날 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겠으나 실상 그에게서는 행동력이라는 것을 찾기가 어려웠고, 덕분에 남자는 자기 주변이나, 거창하게 말하자면 세상에 대해서 끼칠 수 있는 영향력 또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나 미약한 존재성을 소유한 그는 건조하게 얼어붙은 거리 위를 경직된 시선으로 걷고 있었다. 두 시에서 십여 분 정도 지난 시간. 한겨울이기도 하거니와 원체 행인이 없을 때였지만 당연한 예외로 거리 위에는 두꺼운 옷으로 몸을 둘러싸고 넋 나간 눈빛을 가진 사람들이―주로 노인네들이― 점점이 세워져있었다. 남자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거나 혹은 옷깃이라도 스칠까봐 몹시 걱정하는 것처럼 걸었고, 실제로 걱정하고 있었다. 평일의 화창한 대낮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다보면 누구나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흐리멍덩한 동공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늙은이들이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회색으로 칠해진 골목 구석구석에 늘어앉아 처참하게 시간을 증명한다. 남자는 그들의 무기력한 눈과 잇몸 안쪽으로 말려들어간 입술에서, 눈앞을 지나가는 젊음에 대한 은밀한 악의가 빛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자글자글한 주름들 사이에서 조용히, 그리고 불확실하지만 틀림없는 감정으로 그것은 남자를 향해 뻗어 나오고 있었다. 정당하고 맹목적인 적의. 불행한 사람들. 그들의 시선을 피해 한층 더 단단하게 옷매무새를 바로잡으며 남자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그렇게 말했다. 그는 그들의 아들과 딸을 상상했다. 그리고는 시간을 돌려 그 노인들의 젊음을 상상했다. 탄생과 노동과 생존과 생식. 생식. 단편적인 이미지와 그 이미지에 섞인 어슴푸레한 절망적 뉘앙스들이 남자의 정신을 까맣게 뒤덮었다. 곧이어 울먹거리기 시작한 자신의 심장을 부여잡고 그는 지나치게 비대해지려하는 진실로부터 잰걸음으로 도망친 것이다. 목적지에는 역이 있었고, 그는 현명했다.
남자가 탄 전철은 도시 중심에 있는 번화가를 향해 달린다. 아침부터 끊임없이 틀어댔을 것이 분명한, 좌석 밑에 숨겨져 있는 난방기와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의 입김 덕에 그 직방체의 공간은 그다지 따뜻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눅눅하게 습기가 차있었다. 양복을 차려입은 회사원들과 무리지어 떠드는 대학생들, 그리고 등산용 가방을 맨 몇몇 늙은이들이 남자와 같은 칸에 있었고, 인공적인 전등불빛 아래 그들의 얼굴에서는 햇빛의 흔적이 사금파리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남자는 창문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손잡이를 붙잡고 서있었다. 두꺼운 유리창에는 어둠속에서 반사광을 번쩍이는 맞은편 레일과 함께 침울한 표정으로 자신과 마주보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는 사람으로 가득 찬 전철 안에서 어느 누구와도 부딪히지 않고 어느 누구의 말소리도 듣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차창에 고정된 그의 시선은 그 누구의 얼굴도 보지 않기 위해 뻣뻣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그는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주머니에 넣은 한쪽 손은 땀이 나도록 단단하게 휴대폰을 붙들고 있었다.
그대로 얼마쯤 시간이 흐르자 돌연 차량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대낮부터 얼굴이 벌게지도록 술에 취한 어느 중년 남자가 전철에 타면서 무엇이라고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키가 크고 이마가 정수리까지 올라온 그 남자는 승객들에게 문화생활의 중요성에 대해 화난 목소리로 지껄이고 있었다. 이거 봐, 뮤지컬, 뮤지컬 좋지 않아? 그는 전철 벽에 붙은 어느 극단의 광고지를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말했다. 당신들은 이런 데에 돈을 써야해. 텔레비전을 사고 휴대폰 통신사에 요금을 내기 위해 돈을, 지폐들을 쓰는 게 아니라, 예술인들한테 보답해줘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 문화예술 시장이 성장하지―그는 ‘성장’이라고 말하면서 코웃음을 쳤다―. 성형수술과 콘돔에 쓰인 돈들은 이미 충분해. 뮤지컬을 보고, 표를 사고, 그렇게라도 예술가들을 지원하면서 인생을 용서 받아야지. 응? 사람들은 취객의 헛소리에 아무 관심도 없다는 표정을 짓기 위해 입술을 단단히 다물고 있었다. 누구도 그에게 대답하거나 혹은 제지하려고 들지도 않고, 승객들은 그저 다소 성가시다는 얼굴로, 얼른 자신의 목적지에 도착해 술 취한 중년 남자와 뮤지컬 광고지를 뒤로 하고 전철에서 내릴 수 있기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이에서 우리의 주인공만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방어적으로 움켜잡은 그의 양 주먹은 이미 비라도 내리듯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지나친 의도와 가식적인 프로파간다의 색깔을 띤 문장들은 오히려 현실에 넘쳐난다. 절묘한 균형으로 이루어진, 관념으로 기울지 않은 현상과 받아들이기에 부담이 없는 정갈한 의미들은, 말하자면 <현실적인 상황>이라는 것들은 가상의 이야기에서나 나타나는 다듬어진 형태들인 것이다. 소설이 되지 못하는 현실들은 그야말로 소화할 수 없는 의도와 선전의 덩어리들이다. 프로파간다. 선전. 프로파간다. 선전. 프로파간다. 머리가 벗겨진 남자는 병적인 분노와 조소로 일반대중을 질책한다. 직방체로 잘려나간 무대 위에서, 연극적으로. 진심을 담은 연극성으로. 어딘가에서 자극받은 감정이 술기운에 떠밀려, 그의 고결하고 예측할 수 없는 정신의 근간을 이루는 연극배우 기질을 이끌어낸 것이다. 연극…… 그렇게 단언할 수 있을까? 진심을 객관화시키고 있는 것은 나뿐일지도 모른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그런 독백을 읊고 있던 남자는 문장 끝에 구두점을 찍음과 동시에 열린 지하철 문으로 자기도 모르게 뛰쳐나간 것이다. 아아, 앞으로 다섯 정거장은 더 가야했는데. 하지만 그는 아직 닫히지 않은 문으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아무튼 간에, 남자는 그 의도로 덕지덕지 덧발라진 부담스러운 공간으로부터 도망친 것이다. 그는 플랫폼에서 다음 열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그의 입은 ‘선생님’에게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을 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전화를 걸었다면 남자가 통화해야하는 상대는 ‘선생님’이 아니라 그가 고용한 간호사였을 것이다. 그녀는 특유의 상냥하고도 기계적인 어투로 남자의 말을 들어줄 것이며, 어떤 질책이나 유감의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상대해야하는 사람들의 특성을―자신의 직무를― 잘 파악하고 있는 그녀는 설령 남자가 약속시간으로부터 한 시간이나 늦게 되리라고 전화를 걸더라도 아무런 감정적 반응도 보이지 않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알았다’고만 대답할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남자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해질 것이며, 자신이 실제로 전화를 걸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그렇게 혼잣말을 씹었다.
선생님, 선생님, 연극을 아십니까? 연극과 기만과 위선의 차이점을 아십니까? 무대 위에서 조명이 자신을 비출 때, 배우의 눈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 지 아십니까?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것에 대하여, 자신의 미약하고 사소한 손동작 하나에 마저도 사람들이 시선을 집중하고 그것이 뜻하는 바를 고민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그들이 얼마나 커다란 안락과 쾌감을 느끼고 있을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들이 숭배하기위해 찾아다니는 <관객>을 정신의학에서는 무어라고 부릅니까? 그 배우들은 사실 마음만 같아서는 오히려 돈을 쥐여 주고 관객들을 모셔오고 싶을 겁니다. 그리고, 그리고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그들의 무대가 얼마나 넓은지에 대해 생각해보셨습니까? 관객이라는 자리조차도 사실은 하나의 역할인 것입니다. <관객>이라는 이름의 역할입니다. 조용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무대 위 배우들의 손짓과 발짓, 또 어조와 목소리의 톤 하나하나에까지 골몰하여 마치 지상의 인간에게 석판을 내리는 신처럼, 관객들은 배우에게 의미라는 복음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관객 앞에서 배우의 눈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 것 같습니까?
「들어오세요. 2주 만이군요.」
「네.」
공포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무대 위에 올려져있는 모든 것들을 통제하는 공포에 대해서요. 선생님께서는 무대에서 벌어지는 <실수>들에 대해 상상해보신적이 있으십니까? 배우가 대사를 잊어버리거나, 소품을 떨어트리거나, 무대장치가 고장 나거나, 배경이 쓰러지거나, 혹은 어느 <관객>이 난동을 부릴 수도 있지요. 연극무대가 무너지는 겁니다. 연극은 사소한 실수나 혼란만으로도 쉬이 무너집니다. 조명과 어둠은 벗겨지고, 배우고 관객이고 할 것 없이 사람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적나라한 괴리>에 당황합니다. 공기는 얼어붙고 사람들은 경직됩니다. 순식간에 연극은 중지됩니다. 무대장치가 파괴된 시점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역할을 맡아야할지 알지 못하고 곤혹스러워합니다. 그것이 바로 공황상태입니다. 공포의 본질입니다. 배역配役의 실종이야말로 공포의 뿌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연극에 포함되어있던 모든 사람들은 공황의 원인을 증오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대사를 잊어버린 배우를, 장치를 느슨하게 묶은 무대감독을, 휴대폰의 전원을 꺼놓지 않은 관객을, 그것이 누가 되었든 간에 사람들은 넘치는 원한과 분노로 치열하게 공황의 책임자를 찾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엾은 <실수>는 입을 다문 채 고함을 지르는, 격분한 군중에게 처참하게 산산조각이 나겠지요.
「그래, 그동안 어떠셨습니까?」
「글쎄요. 항상 엇비슷하지요.」
어디에 기만이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어디에 이중심리가 숨어있는지 아시겠습니까? 아니, 이중심리라는 말조차 아까운 난해한 기만과 의식간의 지독한 불일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선생님, 나는 생전 연극을 보러간 일이 단 한 번밖에 없습니다. 그마저도 끝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좌석에 앉아있는 내내 그놈의 <실수>가 벌어지지나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저 배우가 독백을 하던 도중 갑자기 난감한 얼굴로 입을 멈추지는 않을까, 저기 불안하게 놓여있는 소품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지지는 않을까, 진지한 장면이 진행 중일 때 관객석의 누군가가 돌연 웃음을 터트리지는 않을까. 나는 그러한 온갖 불안들 때문에 한시라도 안심하고 극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벌벌 떨다가, 결국에는 벌떡 일어나서 뒤도 안 돌아보고 극장 밖으로 도망쳐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렇게나 두려워하던 <적나라한 괴리>를 일으키고 무책임하게 도망친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던 겁니다! 나는 연극이 어떻게 끝났는지, 내가 소란스럽게 도망쳐 나온 뒤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만큼, 내가 말한 공황이니 공포의 본질이니 하는 것은 사실 왜곡된 믿음과 신경증이 낳은 과격한 망상일 뿐일는지도 모릅니다.
「좋습니다. 저번에 드린 약은 어떻던가요?」
「긍정적이에요. 차분해지는 것 같고…… 하여간 긍정적입니다.」
선생님,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굉장한 일입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주장하고, 말을 마치자마자 방금 내가 주장했던 것을 자신만만하게 부정합니다. 그렇다고 날 거짓말쟁이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그저 확정적으로 확정적이지 않은 것뿐입니다. 특히나 내가 단단한 관념과 스스로의 지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제 발로 이런 곳까지 찾아오며, 자발적으로 신경약물들을 집어삼키는 한 말입니다. 사실 나는 그 약들을 먹고 싶지 않아요. 그런 종류의 약들을 먹는 것은 <강제적인 포기>의 뉘앙스가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그 약들을 먹습니다. 심지어 과용하기까지 합니다. 선생님, 어떻게 보면 이것은, 이런 문제들은 필연적인 구석이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하면 시대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유난히 그렇습니다. 세상 어디에 있든 손안에 쥐여진 작은 기계의 번호판을 누르기만 하면 <관객>을 불러낼 수 있는 시대란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내가 자행하는 행위들에 시대적인 문제 따위는 손톱만치도 관계가 없을뿐더러, 실제로는 그런 행위와 이율배반성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과 만나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러나 어쩌면. 그러나 어쩌면.
「잘됐군요.」
「네.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선생님,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나는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이미 짐승의 사체로는 보이지 않도록 세련되게 다듬어진 정육을 보면 참기 힘든 분노와 당혹감을 느낍니다. 사형수의 목을 부러뜨리기 위한 버튼이 세 개씩이나 되며 그 버튼들을 누르는 것 또한 세 명의 각기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혁명주의자적인 증오를 불태웁니다. 매일 밤마다 살맛마저 잃어버릴 정도의 고뇌 속에서 잠이 들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모조리 잊어버린 듯한 얼굴로 깨어난 것을 자각할 적마다 나는 치명적인 자살을 갈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는 타성으로, 내 손에 피를 묻히지도 않은 채 먹고 마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혁명주의자는커녕 정치적인 행동가가 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밤 졸음과 약기운을 견디지 못하고 잠들어버립니다. 아시겠습니까? 나는 모순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결백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다른 모순이 발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모순을 묵묵히 씹어 삼키는 것입니다. 아니, 아닙니다. 사실은 전부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나에게 모순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나는 모순 따위의 것에 신경조차 쓰지 않습니다! 아아, 선생님, 선생님.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자하는 것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럼 이번에는 약의 용량을 조금 늘려보도록 합시다.」
나는 정직을 찾아 헤매는 것입니다. 가능한 한 최고의 정직을 말입니다. 나는 최후의 문장을 찾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 문장을 말하기 위해 나는 방금 뱉은 말을 부정하고, 또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 새로운 문장을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문장을 부정하기 위해 또 한 번 입장을 걸러냅니다. 나는 누구보다 진실을 말하고 싶어하며 정직을 열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입에서 나오는 문장들 중 어느 무엇 하나 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약은 2주 분을 드리겠습니다. 그럼 2주 뒤에 다시 뵙죠.」
그 누구보다도 정직과 진실을 갈망하는 나는 그 누구보다도 거짓말쟁이와 닮았습니다. 그야말로 거짓말쟁이처럼 산만한 주장을 정신없이 늘어놓기만 하는 것입니다.
「네, 2주 뒤에 뵙겠습니다.」
보십시오. 선생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그리고 정말로 내가 <이것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하기나 한단 말입니까―
남자는 침묵을 지켰다. 그가 바라는 단도직입적이고 명백한 그 무엇을 위해서, 상대도 없는 곳에서 끊임없이 떠들기만 하던 그가 귀와 입을 앞에 두고서는 치열하게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선생님’을 뒤로 하고 병실 문고리를 돌리며, 남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자살을 꿈꿨다. 아무튼지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는 공상 속에서 수십 번도 더 자신의 머리를 작살냈던 것이다.
시간은 오후 5시를 막 넘어있었다. 결국 달리는 전철 앞으로 뛰어들지도, 3층 건물에서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지도 않은 남자는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에 몸을 싣고 황혼으로 물든 차창에 무기력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전철은 마침 지상을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겨울답게 빨리도 찾아온 저녁은 냉랭한 공기에 어스름한 노을빛을 뒤섞으며 창밖으로 이질적인 광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눅지근한 빛과 유리조각 같은 냉기의 틈바구니에서 남자는 금빛으로 빛나며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빌딩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테러리스트들에게 ‘나를 무너트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혹은 끝장난다―’고 말하는 듯 도발적으로 서있는 것이었다. 남자는 그것이 비참한 고뇌와 현실의 복잡성에 부딪혀 고통스럽게 마모되어가고 있는 혁명주의자들의 정신에 내려진 희망의 상징 같다고 생각했다. 내일까지는 여섯 시간하고도 삼십분이 더 남아있었다.
집에 도착한 남자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하늘은 어느새 완전히 어두워져있었다. 일없이 거실을 헤매다보니 지독히 배가 고픈 것이 느껴졌다. 남자는 그제야 자신이 오늘 하루 종일 한 끼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는 반사적으로 냉장고 앞으로 걸어가 문을 열다가, 돌연 깜짝 놀라며 발작하듯이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타성! 육식. 채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는 타성으로 먹고 마십니다. 자각을 자각하고 또 그 자각을 자각한다.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은 동물의 피나 사상가적 소명에 부합하지 않는 식품유통과정이 아니다. 나는 순전히 자아주의자이며 극단적인 개인주의자인 것이다. 아니, 그것도 아니다. 주의, 주의, 주의(ism)! 무엇을 천명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냉장고 앞에서 내뱉듯이 입속말을 중얼거리던 그는 신경질적으로 발걸음을 옮겨 책상 위에 있던 휴대폰을 집어오더니, 벌컥 냉장고문을 열고 손에 쥐여져있던 것을 그 속에 던져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다소 흥분한 기색으로 닫은 문을 주먹으로 두어 번 탕탕 두드리다가 홱 몸을 돌려 방으로 향했다.
남자는 방에서 오늘 받아온 약봉지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씩 뜯어 유리컵 안에 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의 손은 히스테릭하게, 그리고 반항적으로 반투명한 기름종이를 하나하나 찢어갔다. 일 일치, 이 일치, 삼 일치, 마지막으로 십사 일치. 어느새 유리컵은 온갖 색깔의 알약과 캡슐들로 수북이 채워져 있었다. 남자는 유리컵을 들어 올려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나도록 흔들다가 컵에 물을 붓고 송두리째 집어삼킨다. 내일이 오기까지는 다섯 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곧 약기운이 두개골 내부를 휘젓기 시작했다. 울증인지 유쾌함인지 분간할 수 없는 무거운 감정이 성대에서부터 정수리까지의 노선을 빙글거리는 웃음기를 띄고 느릿느릿 순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새하얗게 뒤집힌 얼굴로 거실바닥에 주저앉아,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약물이 만들어낸 조용한 유쾌감과 바닥없는 우울의 한가운데에서 남자는 진지하게 단어들을 골라낸다. 악순환. 기만. 소통에의 욕구. 언어에 대한 불신. 시선공포증. <클라망스: 거짓말은 아름다운 황혼과 같아서 물건 하나하나가 뚜렷하게 보이도록 합니다.> 변명. 또 그에 대한 변명. 적나라하게 드러난 진실에 대한 열망. 남자는 싱글거리며 웃는다. 진실을 고백해야지. 입을 열고 혀를 움직여야한다. 내 진심이 모두 계획된 것이고 꼴같잖은 논리에 맞춰 짜여 진 것이라는 사실은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아채고 있을 것이다. 설령 상대를 앞에 두고 입술 한 번 뻥긋거리지 않더라도, 나는 단단하게 물린 살과 뼈의 벽 안쪽에서 허구의 관객이 이해하기 쉽도록 행위의 인과관계와 관념의 동기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한다. 감정과 진심을 담아서. 관객이자 배우. 배우이자 관객. 나는 관객이자 배우다! 배우이며 관객이고 내 안에서 나만을 위한 연극을 구상하여 각본을 짜고 무대를 찾아 정력을 다해 연기하는 가엾은 연극배우다. 가엾은? 아니다! 아무도 날 가엾게 여기지 않는다. 나 자신조차도 그러하다. 여러분―‘여러분’이라니!―, <배우이자 관객>이라는 말이 현대에 와서는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었는지 아시는가? 그것은 자가당착과 자기합리에 빠져 오만해야할지 좌절해야할지조차 선택하지 못하는 예술가들을 위해 준비된 최악의 비난이다. <스스로 배우이자 관객>이라는 비난을 받은 예술가들은 이제 자살하는 수밖에는 없다. 어떤 통찰력 높은 비평가나 너무 위대해지는 바람에 더는 아무것도 주장할 수 없게 된 위인들로부터 그런 비난을 받은 예술가는 순식간에 값싼 감상주의자로, 그야말로 자살해야 마땅한 존재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그들에게 남은 길은 자살밖에 없다. 자살! 자살! 자살! 그러나 그마저도 완벽하게 실행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목숨까지 내던졌음에도 불구하고 <배우이자 관객>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관객을 잘 골라야하는 것이다. 더 무결한 절망을 표현하기 위해 더 무결한 각본을 써야만 하는 것이다. 모든 상황과 뉘앙스가 자신의 자살에게 유리하게만 작용할 완벽한 무대를 만들어야하는 것이다. 무대장치와 소품들을 철저하고 까다로운 눈으로 선택해야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란 말인가. 아아, 그러나, 그러나 나는 괜찮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자신이 <배우이자 관객>이라는 사실을 스스로의 입으로 폭로했고, 또 폭로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 손으로 내 등에 칼을 꽂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끊임없이 고백을 독백할 것이고, 아무에게도 그 역할을 넘겨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모순마저도 씹어 삼켰다!
그러면서 그는 벌떡 일어나 냉장고로 향한다. 그는 다소 흥분한 발걸음으로 냉장고 앞에 도달해 마찬가지로 흥분된 손짓으로 냉장고의 문을 연다. 그리고 차갑게 식은 휴대폰을 끄집어내 뚜껑을 열고 전화번호부를 뒤져 병원의 전화번호를 찾아낸 뒤 당당하게 통화버튼을 누른다. 서리 낀 송화기가 남자의 입술에 들러붙었다. 그리고 남자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사정없이 지껄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이미 수없이 많은 말들을 내보였다. 그리고 그가 이제부터 떠들어댈, 또 한 번의 똑같은 좌절과 기만들을 침착하고 들어줄만할 인내심을 ‘여러분’께 바라는 것은 아마도 무리한 일일 것이다. 지금 남자는 약기운과 자기기만에 힘입어 하루의 끝자락에서 자신만만한 채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그의 마지막 말들이 다시 후회와 자살에 대한 갈증으로 장식되게 될 것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자명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지금 전화기를 붙들고 신나게 지껄여대고 있는 남자 자신부터가 사실 병원의 업무시간은 오후 7시까지이며, 자신이 현재 열정을 다해서 꺼내놓고 있는 ‘말’들은 아무도 듣지 않은 채 전파 사이로 사라질 것이고, 곧 휴대폰의 수화기에서는 ‘금일업무가 종료되어……’ 운운하는 목소리가 조용한 뉴에이지 음악과 함께 흘러나올 것임을 머리 한 구석에서 눈치 채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또 다시 자기 자신의 연극배우 기질에 대한 장황한 좌절의 말들을 늘어놓고, 그 뒤에는 수화기에서 울리는 뉴에이지 음악이 과민하고 노이로제적인 자기 자신의 감정에 대한 정신병리학적 제제일지도 모른다며 터무니없는 피해망상에 시달릴 것이다―더 지독한 것은 남자 자신이 그런 사고방식이 병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로 말미암아 남자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탈력감과 비애에 빠져 공허하고도 열렬한 목소리로, 연결되지도 않은 휴대전화 너머에 도움을 청할 것이 틀림없다. 그는 어디에도 없는 ‘선생님’에게 이제 그만 모든 것을 끝마칠 수 있게 해달라며 도움을 청할 것이다. 그리고 남자는 매일 밤 그랬듯이 본적도 없는 커트 코베인의 시체를 상상할 것이다. 엽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을 꿈꿀 것이다. 두개골의 절반이 부서지고 사방에 피와 뇌수가 튀는 파괴적인 자살을 수천 번도 더 소망하다가, 어느새 약기운에 떠밀려 쓰러지듯 잠에 들 것이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 더없이 절망적인 심상으로 또 한 번 결의할 것이다. 오늘에야말로 내일 같은 내일이 오기 전에 자살할 수 있기를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