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3 상태 기록
20200523 상태 기록
평온하고, 고통은 딱히 없다.
어머니가 책을 한 권 주었다. 지금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마음부터 부자가 되면, 부와 행운이 스스로 굴러들어온다는 내용인 것 같다. 읽어보려고 했다. 항콜린 작용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금세 덮어버렸다.
서맥이 있는 것 같다. 관련이 있는지 아닌지 잘은 모르겠지만, 요 두 달 사이에 걷는 속도가 놀라울 만큼 느려졌다. 육지거북이와 달리기 시합을 해도 내가 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머릿속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그러나 그 먹구름이 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항상 둔하고, 바깥세상에서는 전과 같이 쉴 틈도 없이 자극과 정보가 들어오지만, 그걸 연산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얼마 전 뭔가를 구입하기 위해 간단한 산수가 필요했다. 2만을 100으로 나눠야했다. 30초 정도 생각했으나 도무지 계산할 수가 없었다. 결국 친구에게 물어봤다가 저능아 취급을 당했다. 나는 한 박자 늦게, 내가 이런 산수 문제를 못 풀었다니, 약간 놀라면서 실없이 웃었다.
바보가 되어가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바보인 채로 죽는 것은 약간 두렵다.
5kg 내지 6kg의 체중을 잃었다. 겨우 두 달 사이에. 20대 초에 나는 여러모로 유의미한 저체중이었다. 그때 산 바지를 다시 입어보았다. 조금 헐거웠다. 왜 점점 살이 빠지고 있는지는 사실 알고 있다. 단순히 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체중감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평생 그런 짓은 한 번도 시도해본 일이 없다. 단지 어떤 음식을 보아도, 그것이 음식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것을 입으로 넣어서 맛을 음미하고, 씹고, 삼켜서 소화기관에 보내, 육체의 자양분으로 삼아야한다는 인식이 사라졌다. 한 술 더 떠 며칠을 굶어도 허기를 느끼지 못하고, 한때 자랑거리로 삼았던 미각마저 부서졌다.
얼마 전 부엌에서 동생이 닭고기로 요리를 하고 있었다. 별 이유도 없이 비척비척 다가가 구경했다.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나는 원래 닭고기를 좋아했다. 돼지나 소보다도 닭이 단연코 내 취향이었다. 그러나 동생이 손질하고 있는 그것이 도무지 닭고기로 보이지 않고, 그저 동물 시체조각으로 보였다. 채식주의 윤리 같은 흰소리랑 연관 지으면 곤란하다. 쌀로 밥을 지어도 그게 밥이라기 보단 단지 아사하지 않기 위해 의무적으로 삼켜야하는 사료로 보이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성욕을 느꼈던 것이 언제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마침 날씨도 따뜻해져 젊은 여자들이 아리땁고 얇은 옷 따위를 입고 활보하는데, 난 이제 그녀들과 걸어 다니는 목각인형의 차이점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그저 평온하고, 고통은 딱히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