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시

죽음희망

Lim_ 2016. 11. 11. 00:38

죽음희망



누군가 나에게 말해 달라.

너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

다고, 덜덜 떠는 신경쇠약에 걸린 너의 손은 아직도 흰

종이 위에 펜을 쥐고 날고 싶지만, 그렇지만 너의

동기도 근거도 의무도 이제는 없다고.


아무래도 정신이 온전치 않아. 몇 번을 외쳐도 혼잣말이다

저 자는 정신이 온전치 않아, 하고 사람들의 입

에서 터져 나오는 경멸의 어투도 내 안에서 나의 혼잣

말이 되어버린다. 사흘 전까지만 해도 붙잡고 있던 내 논문에는

악필로 갈긴 수정사항이 본문보다 많아졌다. 그 뒤

내 온전치 않은 정신이 멈췄다.


작가들이 도대체 어떻게 절필을 하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어

아니 절필이란 대체 뭐지? 그것은 자살과 동의어다! 아아

기자회견을 열어놓고 수

십 개의 카메라 앞에서 목을 매다는 이상스러움……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아사하겠어, 나의 <체면> 때문에!

전부 지독한 농담이다. 스스로 살을 파먹는 농담.


그러니 제발 누군가 말해줬으면. 신성이 담긴 강력한 목소리로

너는 더 이상 없다, 라고! 부디 내 목에 도끼를

단 한 번의 힘찬 휘두름으로 내리쳐달라고. 그러나

그러나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실상은

아무도 그러한 권한도 의지도 갖지 않는다.

절필도 자살도 공상적 낭만주의의 배설물이다.


<그렇다면 끝까지 살라는 말이야? 치욕과 수치와 절망을 그러쥐고, 더는 두뇌가 작동하지 않을 때까지, 이미 바닥난 재능에 좌절하면서, 그러면서도 계속 허망한 펜을 놀리고, 노트 위에 진실성 없는 말들을 뿌리고, 자조하며, 혐오하며, 눈물 흘리고 소리치면서 몸부림치라고? 더는 위대함도 무엇도 없음에도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이 내 목을 그을 때까지?>

그렇다. 애당초 넌 행복하라고 태어난 것이 아니니까.

그렇다. 넌 고통 받고 점점 무의미해지기 위해서 존재를 인정받았다.

<염병할……. 그래도 언젠가 내 머리가 당나귀대가리가 된다면, 그때는 나도 죽겠지.>

그 정도는 바라도 좋아.


그런데 어떠한 희망이 있다. 점점 굽어가는 나의 어깨의 윤곽에서,

이것은 단순히 조금 오래 가는 슬럼프에 지나지 않는다고 곧 돋을 듯한

날개가 중얼중얼. 거짓말인지 기만인지 혹은 정말로 그러

한지 내가 알 게 뭐람. 결국에는 자살도 꿈인 것을, 끝이라는 것도

결코 내가 원하는 형태로는 오지 않을 것을, 나는 차가운 바람이 불면

길바닥에서 급사할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글을 쓰면서 희열하다가

글을 쓰면서 고통 받고, 글을 못 써 광란하다가

글을 못 써 울부짖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가난이 내게

걸쳐준 거적때기를 걸치고, 그것을 방패삼아, 삶이라는 저주에 침을 뱉고

악마가 내게 오면 나는 담배 한 까치에 전 세계를 팔아버리겠지.


그러나 어찌 되건 나는 죽지 못할 것이다

계속 성냥을 긁으며

불타는 세상의 환각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 흘리고

다음날 아침이면 습기 찬 지하실에서

혼란스러운 머리로 눈을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