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의 꿈
1. 꽤 짧은 시간만에 완성했다. 원고지 80페이지라는 분량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2. 친구에게서 이제 슬슬 니체와 까뮈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냐는 아픈 비평을 들었다.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사실은 방법을 잘 모르겠다. 블랙 코미디에 대한 욕심이 있기는 하다. 도전해볼만하다. 그러나 내게 코미디에의 센스가 있을지 어떨지는 완전히 미지수다.
3. 이거 발표하면 사회적으로 난리날 것 같다.
죄수의 꿈
1
안녕하십니까 나리. 어제 잠깐 뵌 분이로군요. 오늘은 무슨 일입니까? 취조라구요. 예, 좋습니다. 저야 항상 할 말이야 많지요. 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말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자리에서는 끝도 없이 말할 수 있답니다. 아, 물론 경관나리의 시간을 무작정 뺏겠다는 것은 아니예요. 나리께서도 제게 듣고 싶은 말이 있으니 여기로 오신 것 아니시겠습니까? 그것은 마땅히 말씀해드려야지요. 다만 저는, 한 가지 주제로 얘기를 하다 보면 끝도 없이 이야기가 가지를 치거든요. 그래서 미리 당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성이라서 어떻게 할 수가 없습죠. 말하자면 나쁜 천성이에요. 근데 말씀이지요, 저 불투명한 유리창 뒤에는 다른 분들이 계십니까? 아, 물론 그렇겠죠. 다만 여쭤본 것뿐입니다. 저도 얘기를 하려면 관객이 얼마나 되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거든요. 배우들도 관객석에 앉은 관객들의 머릿수를 보면서 연기를 하지 않습니까? 그 점에서 그들은 자유롭기는 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자유를 바란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이죠. 제가 이제 와서 어떻게 자유를 바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아, 경관나리, 이것은 피해자들의 혈육이나 유족들에게는 퍽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으나, 저는 절망 따위는 하고 있지 않답니다. 다만 조금 씁쓸할 뿐이죠. 말하자면 아무도 저를 이해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말입니다. 어쩌면 모든 범죄자들이 다 같은 말을 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말로 그래요. 나는 몰이해가 두렵고 안타깝습니다. 뭐어, 어쩔 도리도 없는 일입니다만! 사실 저는 그 사람들의 분노나 슬픔 같은 것을 반절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해하고는 싶지요. 그러나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에게도 잠깐이지만 가족이 있었지요.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얼굴은 사진으로만 알 뿐입니다만, 어머니와는 꽤나 오랫동안 함께 살았어요. 그러니까 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말이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어땠더라? 저는 그때 공부를 하느라고 도시에 나가있었는데 결국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습니다. 친척들이 다 도맡아서 처리했죠. 알고 계신다고요? 예에. 그렇군요. 이미 신문에도 다 났단 말이죠. 흉악범 A모씨는 과거 친모의 장례식장에도 불참했다! 라고요. 그것 참 희극이로군요. 어쩌면 그로 인해서 저를 동정하게 된 자도 있을 것이고 더욱 증오하게 된 자도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나리, 그거 아십니까? 지금 매스컴으로 말미암아 열심히 짓밟히고 있는 <나>는 실은 제가 아니랍니다. 그건 대중들의 필요에 의해 창조된 새로운 악의 화신에 지나지 않아요. 법정에 섰을 때도 그런 것을 느꼈습죠. 판사, 검사, 배심원들부터 심지어는 저의 변호사까지도 독기어린 눈으로 저를 노려보고 있는 것을 말입죠. 그러나 그들의 그 증오가 담긴 눈빛은 내가 아니라 내 뒤에 있는 어떤 상징 같은 것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의 증오와 분노 속에서도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어요. 아니, 슬프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실은 슬펐지요. 하지만 그 슬픔이 내가 미움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느낀 슬픔은 아니었어요. 다만 일이 이 지경이 되고도 아무도 나를―심지어 증오의 눈빛으로조차― 똑바로 바라봐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슬펐습니다. 아, 하기는 도대체 누가 다른 사람과 진정으로 마주볼 수 있단 말입니까? 인간이라는 것은 타인에 대한 욕망이 있어서 늘 자신의 욕망으로 타인을 비춰보기 마련이에요.
이런, 너무 주절주절 얘기해버렸군요. 자, 좋습니다. 오늘은 뭘 물어보러 오셨죠? 피해자요. 누구 말씀하시는 거죠? 아, 그 아이 말씀이군요. 알겠습니다. 그럼요, 기억합니다. 아마 아홉 살인가 열 살인가 그랬죠. 네. 살해하는 과정에서 강간행위가 있었냐구요? 정확히 언제를 말씀하시는 거죠? 살해하기 전인가요 살해한 뒤인가요? 언제든 상관 없다구요. 흠, 그래요. 정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없었습니다. 저는 그 남자애를 강간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애당초 내가 바란 건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흠. 이건 말씀드리기 좀 껄끄럽군요. 하지만 뭐 이렇게 된 판국에 비밀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릴 사실이 또 신문에 날지도 모른다는 것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여하간 말씀드리죠. 전 성불구자입니다! 네, 맞습니다. 고자입니다. 딱히 어디가 망가진 건 아니에요. 언제부터 그랬더라? 아마 중학생 때부터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그랬어요. 고등학생 때 비뇨기과에 가본 적이 있었는데, 원인을 모르겠다면서 정신과로 보내더군요. 정신과에서는 정신적인 트라우마나 이상이 있어서 성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는 둥…… 그런 소리나 하구요. 뭐어, 그다지 신경도 안 썼습죠. 육체적인 쾌락에 탐닉해볼 수 없는 것이 다소 안타깝기는 하지만, 다 팔자 소관인 것을 어쩌겠습니까. 만약에 제 성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었다면, 어쩌면 그 피해자들을 강간하거나 했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잘라 말할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전 애당초 육체적 쾌락 같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거예요. 눈이 안 보이는 사람에게 꽃의 아름다움을 말해줘서 뭐에 쓰겠습니까? 그냥 그런 거려니 싶어요. 그리고 제가 고자라는 사실이 제게 장애로 느껴진 적도 없고요. 제 친구들만 봐도 그놈의 ―실례―좆대가리 때문에 고생 좀 하더군요. 아, 하지만 저는 물건을 놀리지는 못해도 창녀촌에는 몇 번 가봤습죠. 무엇보다도 집이 가까운 곳에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런 여자들 생활이 궁금하기도 했고요. 어디까지나 지적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경찰나리, 이거 아십니까? 그 여자들은 생각보다 자신의 생활을 처량하게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그녀들은 그냥 몸을 주고 돈을 받죠. 그리고 말인데요, 그녀들이 가장 싫어하는 손님은 다름 아닌 먹물 먹은 인간들이라고 합디다. 작가나 기자 같은 양반들이 오면 골 때린다는 거죠. 그네들은 해야 할 짓은 안 하고 귀찮게끔 자꾸 이것저것 물어본다고요. 너는 왜 이런 데 있니. 팔려 왔니. 얼마 받고 이런 일 하니. 아, 물론 이해야 할 수 있습죠. 그 양반들은 그렇게 하나하나 따져보는 게 직업이니까요. 그래도 그녀들 말로는 짜증이 난다 합디다. 말인즉슨 찔러보지 않아도 될 구석을 찔러서 괜히 잡생각을 만든다는 거지요. 그러나 그것 또한 그 양반들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묻어둬도 될 일을 괜스레 꺼내서 먼지 닦고 살펴보고 하는 것 말입니다. 저 또한 어떻게 보면 그들 부류죠. 만일 제가 생명의 원칙이나 탐식의 갈망 같은 것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또 생각 또한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렇게 잡혀있지는 않겠죠. 나리, 저를 오만한 인간이라고 여기지는 말아주십시오. 저는 겸손한 인간입니다. 제게 얼마큼의 자본이 있는지도 알고 있고, 또 얼마나 잃고 있는지도 알고 있어요. 저는 말입죠, 어쩔 수가 없었답니다. 배고픈 자들은 음식을 탐하고 가난한 자들은 재산을 탐하죠. 저는 생명을 탐했던 겁니다. 제게는 그것이 부족했거든요. 젊은 자들의 피 속에서 살아 숨 쉬고 날뛰는 에너지 말입니다.
저는 학생 시절부터 늘 느껴왔답니다. 제게 뭔가가 결핍되어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무엇이든지 다 하려고 노력했었죠. 무언가를 찾으려고 말입니다! 무언가를! 그때 저는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이건 모두 신이 죽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살 방도를 찾아야지요. 배가 고프면 음식을 집어먹고, 목이 마르면 우물을 찾아다니면서 살아야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도 열심히 뭔가를 찾아다녔습니다. 한때는 술, 술! 그놈의 술에 그렇게 절어 살던 시절도 있었어요. 한때는 절망하다 못해 자살도 시도했었습죠. 지금에 와서는, 어떤 이들은 그때 제 자살이 성공했더라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목청 높여 외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살았어요. 살아얍지요. 산다는 게 무엇입니까? 그 유명한 니체가 말했듯이 산다는 것은 칼과 방패를 들고 전쟁터로 나가는 것입니다. 아, 전쟁! 그것은 인간의 본성 깊은 곳에 얼마나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습니까? 지금처럼 피를 보기 힘든 시대에도 사람들은 늘상 마음 깊은 곳에서 전쟁을 외치고 다닙니다. 저는 그 외침을 남들보다 더 잘 들었을 뿐입죠. 그러나 나리, 저는 강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의 투사들처럼 잘 단련된 근육과 훤칠한 키를 갖고 있는, 아무런 공포심도 없이 골리앗에게로 달려들 수 있는 그런 인간이 아니었다는 말씀입니다. 하기는 제가 골리앗에게 달려들어서 무얼 하나 싶습니다만. 제가 어린아이들만 골라서 범행을 저지른 것에 의구심이 드시겠지요?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바로 그 어린아이들의 순진무구하고 깨끗한 피였으니까 말입니다. 세상 쓴맛 다 보고 낡고 헐어빠진 이들이나 늙은이들은 별 볼일이 없어요. 그들에게서는 원시의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원시의 깊고 벽력같은 침묵이, 경외스러운 고동이 그들에게는 없어요. 저는 말입지요 나리, 그것이 필요했던 겁니다. 가장 순수하고 잔인하며 강력한 것! 그것에 대한 깊은 공복감이 언제나 내 뱃속을 휘저어놓고 다녔던 것입니다.
아, 나리, 지금 제가 이렇게 변명 같은 말들을 늘어놓고는 있지만, 제가 어떤 속죄를 원한다고, 혹은 무죄를 원한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주십시오. 나리, 사람은 말입지요, 죄를 짓고 나서야 더욱 삶을 갈망하게 되더군요. 죄라는 것은 삶에 대한 일종의 각성제와 같은 것입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명백한 죄인이지요. 제가 맨 처음으로 아이를 죽였을 때,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그것은 말입죠, 제가 교수형에 처해지리라는 확신이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결국에는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것 말입니다. 죄를 지은 이상 넉살 좋게 넘어가거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꾸밀 수는 없습니다. 죄라는 것은 결국 벌을 가져옵니다. 나리, 저는 제가 사형 당할 것을 압니다. 그 날 아침, 환하게 해가 뜨던 그 축축한 거리에서 집을 나서는 아이의 머리를 망치로 후려갈긴 순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부터 더욱 삶을 탐욕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결말이 정해진 순간부터 배고픈 늑대처럼, 전진밖에 모르는 브레이크가 망가진 열차처럼 저는 삶을 먹어치웠습니다. 야수 같은 폭식이었습니다. 제가 두껍고 단단한 밧줄에 매달려 숨이 멎기 전에, 저는 저의 공복감을 채워 없애야했고, 저의 삶을 완성해야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래서 저는 두 번째 범행을, 그리고 세 번째 범행을, 네 번째 범행을, 다섯 번째 범행을 어떤 망설임도 없이 치러냈습니다. 이것이 이기주의나 자아주의로 보이기도 하겠지요. 저는 상관없었습니다. 어차피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저의 삶 밖에 없었습니다. 아, 이러한 사상이 공동체를 파멸로 몰아넣는 것이겠지요. 당연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형에 처해지는 것입니다.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 상관도 없었습니다. 제게 제일 중요한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경험에 비추어 본 개인적인 지론입니다만, 인간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번 쯤은 죄를 저질러야 합니다. 그래야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알게 됩니다. 우선순위가 명확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리, 말씀드렸다시피 죄는 벌을 가져오기 따름이거든요. 개인은 자신의 묵시적인 결말을 분명하게 알아차린 뒤부터 드디어 어떤 확신을, 그리고 행동주의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꿈처럼 흐릿한 사상만으로는 아무 것도 이뤄낼 수 없습니다. 죄를 짓고, 개인은 삶에 미치광이처럼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더 큰 죄이든 무엇이든, 아무튼 지간에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요.
아, 너무 지껄였군요. 나리는 좋으신 분입니다. 저 같은 죄인에게 이렇게 혀를 놀릴 시간을 주시니까요. 그리고 기꺼이 들어주시지 않습니까? 저는 제가 역겨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나리에게 저는 괴물처럼 보여질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나리는 저의 입을 틀어막고 몽둥이로 후려 패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감사하게 여깁니다. 나리 같은 분이 저를 취조하러 오셨다는 점에 대해서요.
질문이 있으시다고요? 무엇입니까? 예. 그 아이들이요. 예에, 아시다시피 뒷산에 묻었죠. 트렁크에 담았어요. 그리고 뒷산으로 끌고가서 꺼내서 묻었습죠. 그 전에요? 시체가 왜 그렇게 훼손되어 있었나구요. 그것은 간단한 일입니다 나리. 저는 그 아이들을 죽인 뒤에, 되도록 가장 빨리, 조금이라도 피가 식지 않도록 재빨리 집안으로 끌고와서 장도리로 가슴을 파헤쳤습죠. 다른 것은 필요 없었습니다. 껍질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았어요. 저는 가죽을 찢고 갈비뼈를 뜯어낸 뒤에 아이들의 왼쪽 가슴에 담겨있는 심장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먹었지요. 그 순간순간의 환희를 저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답니다. 주변이 환해지면서 하늘에서 종 치는 소리까지 들려오는 것 같았어요. 만약에 신이 있다면―하느님께서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옳지, 그렇다. 너는 바로 그것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라고요. 왜 그런 짓을 했냐니요? 나리, 지금까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공복감이 있었어요. 그 공복감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겁니다. 심장은 말입지요 나리, 생명의 원천입니다. 그 젊고 활발한, 태초의 인간들 같은 아이들의 생명의 근원이란 말씀입니다. 그것을 먹지 않고 도대체 무엇을 먹겠어요? 저는 그 심근들과 하나가 되었고, 제게도 술잔에 넘치는 포도주처럼 생명이 차올랐습니다. 창피한 얘기입니다만, 저는 그만 감동해서 울고 말았습죠. 두 번째 아이도, 세 번째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쯤 검시실에 있을 그 아이들의 시체에는 모두 심장이 없겠지요. 제가 먹어치워버렸으니 말입니다. 아, 나리, 제가 웃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어쩔 수가 없답니다. 저는 사실 기쁩니다. 제가 생명나무의 과실을 찾아내서 마침내 그것을 베어 물었다는 것이 말입니다.
예. 그렇습니까? 오늘은 이것으로 끝인가요? 네. 알겠습니다 나리. 그렇다면 더 이상 나리의 시간을 뺏을 수는 없지요. 나리, 법관들에게 가서 전해주십시오. 그자는―그러니까 저 말입지요― 죽어 마땅한 인물이라고 말입니다.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하십시오. 교수형을요! 예 나리.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리.
2
오늘은 날씨가 퍽 좋군요 나리. 태양이 환하게 뜬 게 날씨가 아주 좋아요. 감방 안에 있으면 이런 태양을 보기가 쉽지 않죠. 벽에 창문이 하나 붙어있긴 하지만, 너무 작아서 태양은커녕 하늘도 잘 안 보인답니다. 그래도 창문이 있다는 것은 다행입지요. 감옥에 갇혀있으면 말이죠,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정말 한가하답니다. 게다가 요즘은 가을이라서 휑하지 않습니까? 할 일이라고는 바닥에 퍼지고 앉아서 창문이나 내다보는 것뿐이에요. 가끔 구름이 지나가곤 합니다. 새들이 보일 때도 있지요. 아주 가끔이지만요. 사실은 말입죠, 감옥에 갇혀있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아요. 괴로운 것은 지겨움뿐이랍니다. 자유요? 전 그런 것은 믿지 않습니다 나리. 집밖을 활개치고 다니든 한 평짜리 감방에 갇혀있든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애당초 자유롭질 않으니 감옥에 갇혀도 잃을 게 없는 셈이지요. 그리고 그 지겨움마저도, 익숙해지면 별 것 아니랍니다. 저는 요새 하루에 스무 시간을 잡니다. 나머지 네 시간은 식사, 샤워, 운동, 배설 시간이죠. 그래도 시간이 조금 남기는 합니다. 그럴 때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창문을 보죠. 별 일 없이 지낸다는 것도 참 좋은 일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화를 내겠지만, 저는 요즘 들어 불행이나 우울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한답니다. 오히려 힘들었던 것은 옛날이었죠. 온갖 잡생각들로 머리가 드글드글 들끓었으니까요. 라스꼴리니꼬프도 자수를 하기로 결정짓고 나서는 어조가 단순해지지 않습니까? 사태가 결정지어지기 전이 항상 제일 힘든 법입니다. 그럴 때는 인생의 모든 면이 곪아터진 상처처럼 쓰라리고 역겹죠. 저로 말하자면 첫 번째 범행을 저지르기 전까지의 삶 전부가 그러했습니다. 제 범죄를 긍정하고자하는 의미는 아니지만, 아무튼 간에 저에게 있어서 범행을 저지른다는 것은 곧 교수형에 처해진다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요. 그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예요. 아파트 꼭대기에서 떨어지면 다진 고기가 돼서 죽는다는 것처럼 명백한 귀결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자신이 죽는다는 것이 명확해지면 삶도 명확해집니다. 다소의 긴장감도 생기고, 아무튼 좋은 일이라 이 말입니다. 이런, 웃음이 나왔군요. 실례했습니다.
그런데 경관나리,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가 많이 내렸어요. 매일 같이 비가 내렸죠. 하늘은 우중충하고 끝도 없이 빗방울이 쏟아졌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누가 양동이로 퍼붓는 것처럼 말예요. 비 때문에 날씨는 차갑고, 밖에 나가기도 싫었습죠. 그래서 몇날며칠이고 집안에 퍼질러져 있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있어 삶이란 끔찍한 것이었으므로, 저는 추위와 습기 속에서 익사체처럼 잠겨 무언가를 고민했습니다. 내내 고민했지요. 어떤 명확한 명제가 있던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자살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고 가끔은 미래에 대해, 가끔은 과거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습죠. 여하간 삶 전체가 끔찍한 고민덩어리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풀리지 않은 실몽당이와 같아서, 어디가 끝이고 어디가 시작안지조차 알 수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저의 가슴과 뱃속에서는 지옥의 구렁텅이 같은 공복감이 악마처럼 사방을 긁어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저는 거의 착란 상태가 되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신이시여, 당신이 어디에 있단 말씀입니까? 당신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나는 세상의 찌꺼기나 다름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내게 빛을 주려 하신다면, 부디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말입죠, 나리. 저는 다음 날 아침에 날씨가 갠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환한 태양이 대지를 비추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어요. 저는 누가 시킨 것처럼 공구함에서 망치를 꺼내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가방을 매고 집을 나서는―분명 등교하는 것이었을― 아이를 발견하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뒤통수를 내려쳤지요. 그리고 제 마음에도 불이 밝혀졌습니다. 저는 억 소리도 내지 못하고 기절한 아이를 집까지 끌고 들어와서 두어 번 더 머리를 내려쳤습니다. 두개골이 곤죽이 됐지요. 그리고 말씀드렸다시피, 가슴을 열어서 심장을 뜯어내고 그것을 먹어치웠습니다. 그리고 제 뱃속에도 불이 들어왔어요. 저는 누구에게 인지는 몰라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제 인생은 곧게 펴진 나뭇가지처럼 향상성을 갖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는 곧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 아닙니까? 저는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말씀입지요, 감옥 안에 있는 것이 심심하기는 합니다. 말 상대가 없거든요. 이것도 하나의 죗값을 치르는 일이려니 하고 생각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심심한 것은 사실이에요. 아시다시피 저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을 아주 좋아해서 초면인 사람에게도 금세 이런저런 것들을 말해버리고 말거든요. 지금도 이렇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경찰차 안에 타서 경관나리에게 온갖 것들을 떠벌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제가 어디로 가는 거지요? 요즘에는 항상 감방 안에서만 살다가 오랜만에 햇빛을 보니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게다가 다른 경관 분들까지 몇 명이나 대동하고 말예요. 제가 어디로 가는 겁니까? 현장검증이라구요. 그런 것이 필요합니까? 아, 물론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이겠지요. 어리석은 질문을 해서 죄송합니다. 다만 저는 이제, 제가 밧줄에 걸릴 날만 기다리고 있으니 다른 일들은 하나 같이 하찮게 느껴져서 말이죠. 하지만 이것도 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일이니 수행하는 것이겠지요. 국가는 참으로 많은 것들을 국민에게 바랍니다. 사실 국가라는 것은, 제 생각으로는 말이죠, 없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것은 일종의 허상입니다. 왜냐하면 <국가>라는 존재는 존재하지 않거든요. 그건 개인의 집합과 규율로 말미암아 생겨난 일종의, 허수 같은 것입니다. 방정식을 풀 때는 필요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존재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허수가 인격과 권위를 갖게 되지 않았습니까? 아, 이것은 꽤나 신비한 일입니다. 말하자면 말이죠, 저는 교수형에 처해질 겁니다. 그런데 신비하게도, 저를 사형시키는 국민은 아무도 없어요. 몇 명의 법관들이 망치를 두드려서 <그를 죽여도 좋다!>고 허가하면, 아무런 책임도 없는 세 명의 공무원들이 교수대 앞에서 동시에 버튼을 누르죠. 그러면 발판이 떨어지고, 저는 목이 달랑달랑 매달린 채로 목뼈가 부러져 죽게 되는 겁니다. 나리, 저는 도대체 누구에게 살해당하는 겁니까? 그 공무원들조차 자신이 올바른 버튼을 눌렀는지 아닌지 알지 못해요. 그러면 그 법관들에게 살해당한 것입니까? 아니죠, 그들은 <그를 죽여도 좋다고 국가가 허가했다>라고 대변하는 것뿐입니다. 그럼 저는 국가에게 살해당했습니까? 그런데 국가가 뭐지요? 개인의 집합체이자 규율의 상징 아닙니까? 규율이 인간을 죽일 수 있단 말입니까? 아, 저는 죽기 싫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누가 저를 죽이는 것인지 통 알 수가 없어서 여쭤보는 거예요. 대답을 못하시는군요. 흠, 저는 감방 안에서 저의 죽음에 대해서 몇 가지 생각들을 해보았습니다. 만약에, 제가 죽인 다섯 명의 아이들의 유족이, 말하자면 그 아이들의 아버지나 어머니나 형제가 말입니다. 칼을 들고 와서 제 몸에 다섯 개의 칼자국을 심어 저를 죽인다면, 참으로 명확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아마 복수심으로 불타고 있겠죠.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죽인 살인자를 돌로 쳐서라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복수의 권리를, 사람도 짐승도 아닌 국가와 법이라는 괴상망측한 것에게 넘겨줘버렸어요. 그들은 제가 사형당하면 만족할까요? 흠,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손에 피도 묻지 않았는데, 아, 최소한 그들의 세금에는 피가 묻겠군요. 그래도 여전히 뭔가 못마땅하지 않습니까? 이상한 일이예요. 저는 며칠 전부터 계속 그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누가 나를 죽이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예요.
도착했나요? 이런, 이곳은 제가 살던 동네로군요. 하긴 저는 범죄도 전부 이 동네에서 저질렀으니 말입니다. 제가 잡히기 전까지 이웃들은 전부 공포에 떨었을 겁니다. 그들에게 나쁜 짓을 했군요. 내리라고요? 알겠습니다. 어, 이런, 기자들도 있군요. 이 모자는 뭡니까? 저요? 아뇨, 필요 없습니다. 딱히 제가 당당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무튼 필요 없어요. 그냥 나가지요. 아! 공기가 좋군요. 바람이 선선해서 기분이 좋아요. 사람들이 많이도 있군요. 흠, 웃으면 안 되는데, 자꾸 웃음이 나오네요. 이거 또 신문에 크게 나겠군요. 방금 저 기자가 절 찍었거든요. 흉악범이 현장검증에서 웃고 있더라고 신문에 나겠어요. 뭐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말씀드렸다시피 욕먹는 건 제가 아니라 저라는 이름을 가진 매스컴이 만들어낸 악의 화신이에요. 인간은 말입죠, 악의 화신이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답니다. 제 입으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이상한가요? 하지만 정말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순수한 악한이 되려고 해도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인간은 모두 회색입니다. 아주 구질구질하고 지저분한 회색이죠. 저만 해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인간…… 음, 아닌가? 잘 모르겠군요. 누군가를 사랑해본지가 너무 오래됐어요. 하지만 저도 어렸을 때는 부모님을 사랑했겠죠.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그렇지 않겠습니까? 다만 죽음을 앞둔 인간이라 사회적인 감각들이 모두 마비된 것일지도 모르죠. 뭐어 아무튼 간에, 이제 저는 뭘 하면 됩니까? 저기로 갑니까? 예.
네, 여깁니다. 여기서 그 첫 번째 아이를 망치로 때렸죠. 여기 빌라 모퉁이에서…… 아이는 가방을 매고 학교에 가고 있었고, 저는 들고 있던 망치로 뒤통수를 내려친 뒤에, 기절한 아이를 업고 이쪽으로…… 네, 저기가 제 집입니다. 제 집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말씀드렸다시피 머리를 몇 번 더 때리고, 죽은 것이 확실해지자 장도리로 가슴을 파헤쳐서 심장을 꺼내 먹었습니다. 기자 분들도 집까지 따라 들어오시는군요. 아, 여기 핏자국이 그대로 있네요. 청소를 안했거든요. 평소에도 그다지 깨끗하게 살지는 않습니다만, 사방에 피가 튄 것을 보자 이걸 어떻게 청소하나 싶어서, 그만 다 귀찮아졌습니다. 그래서 그 뒤에도 그냥 내버려두었죠. 그리고 두 번째 아이부터 다섯 번째 아이까지 전부 여기로 데려와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심장을 꺼내서 먹었고요……. 사실 저는 날고기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요. 생선회라면 가끔 먹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심장을 구우면 무슨 맛이 나겠어요? 그리고 저는 저의 야만성을 저 자신에게 증명해야했습니다. 제게 아직도 그런 원시의 감각이 남아있다는 것을요. 아무튼, 여기가 화장실입니다. 여기서 옷을 빨고 손과 입 주변을 씻었고, 그 뒤에 트렁크에 시체를 담아서 뒷산으로 가져갔죠. 그때 쓴 트렁크가 없군요. 서에 있다고요? 그렇군요. 생각해보니 그렇겠어요. 그럼 제가 쓴 망치도 거기에 있겠군요.
아, 이것 참. 오랜만에 집에 오니 별별 생각이 다 나네요. 이 집을 살 때는 저도 직업이 있었습죠. 건실한 회사원이었습니다. 아니, 거짓말입니다. 사실 건실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어떻게 건실할 수가 있겠습니까? 매일 같이 뭔지도 모를 갈증에 시달려서 잠도 자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학생 때도 저는 친구들 사이에서 이상한 녀석으로 통했죠. 어딘가 이해하지 못할 녀석이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교 관계는 의외로 활발했어요. 친한 친구들도 몇몇 있었고, 학생들이나 선생들이나 대체로 절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전 천성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그들이랑 대화하는 것이나, 그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 싫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항상 그 공복감이었죠. 제 영혼의 일부가 텅 비어서, 무언가를 열렬히 갈구하고 있다는 그 느낌말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다 어쩔 수 없는 것이었거니 싶어요. 물론 제가, 흠, 그 공복감을 무시하고 집 안에서 목을 매달았다면 만사가 더 도덕적으로 흘렀겠지만, 별로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 않군요. 말하자면 범죄 자체가 저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저라는 인간이 살아야 했던 이유 말예요.
보십시오. 햇빛이 잘 안 들죠? 집 자체가 서향인데다가 반쯤 언덕 밑에 파묻혀있어서 볕이 안 들어요. 낮이나 밤이나 캄캄하죠. 그래도 창문이 있어서 낮에는 커튼을 통해 빛이 조금 들어오긴 합니다만, 저는 뭐가 됐든 그다지 달갑지 않았어요. 아시다시피 햇빛은 잠을 자는 데에 방해가 되거든요. 그게 말입죠, 회사를 관두고 나서는 늘 잠만 잤답니다. 술을 마시고 자고, 술을 마시고 자고, 그 반복이었어요. 왜냐하면 잠만큼 생각을 잊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이 없거든요. 게다가 꿈속에서는 아무런 공복감도 느껴지지 않는답니다. 미치광이의 머릿속처럼 마구 급변하는 꿈속 세계가 모든 것을 같잖게 만들어버려요. 그래서 저는 한동안 계속 잠만 잤답니다. 그러나 그 짓도 반 여년 만에 질렸어요. 질렸다기보단, 몸이 견딜 수가 없었어요. 잠에서 깨고 나면 사납게 달려드는 현실이, 방 안의 눅눅하고 무거운 공기가 잠들기 전보다 더 포악하게 저를 물어뜯었던 것입니다. 슬슬 나가죠. 이 집 안에서 설명할 것은 더 이상 없어요. 기껏해야 잠을 자고 술을 먹은 것밖에 없습니다. 물론 저의 살인으로 인해서, 이 집에도 조금이지만 불이 밝혀지긴 했겠지요. 생명의 불이요. 그러나 더 이상 이 집에서 살 사람도 없을 테니, 다 의미 없는 일이군요. 이제 이 집은 살인자의 침소로, 그리고 식인 행위가 벌어졌던 불경한 제단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아무도 여기서 하나의 생명이 눈부시게 꽃피었다는 것을 모를 테지요.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애당초 누군가를 위해서 한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위해서 한 일도 아니고요. 그저 저 자신이 공복감을, 생명에 대한 공복감을 해소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제는 됐어요. 저는 무려 다섯 명의 젊고 날뛰는 생명을 집어삼켰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신이 된 기분입니다. 저는 죽어도 썩지 않을 것입니다. 예술가는 아름다움을 탐해서 작품을 남기고 사업가는 재산을 탐해서 기업을 남기죠. 저는 생명을 탐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가장 부족한 것을 바래요. 아, 지난날의 제가 꿈만 같군요. 그때의 뼈만 남은, 활기도 생기도 없는 뼈다귀가 꿈만 같아요. 이제 저는 근육과 살집이 탄탄하고 건강한 피가 흐릅니다. 왜냐하면 제가 찾아 헤맸던 것을 마침내 찾아서 저의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기자 양반들, 나를 보십시오. 내 사진을 찍어서 신문에 크게 올려요. 여기 흉악한 범죄자가 서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얼마 뒤에 죽을 것입니다. 당신들의 손도 아닌, 추상의 무언가에 의해서 목이 졸려 죽을 것입니다. 목뼈가 부러져 흐느적거리는 내 시체에 침을 뱉어도 상관없습니다. 지옥에나 가라고 저주를 해주세요. 왜냐하면 저는 해야 할 일을 전부 다 해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게 뭐야. 계란. 계란이네요. 아, 괜찮습니다 경관나리. 벽돌이 안 날아온 것이 천만다행이죠.
3
안녕하십니까, 신부님. 처음 뵙겠습니다. 네. 알고 있습죠. 정확히 언제인지는 몰라도 며칠 내로 저는 교수형에 처해질 것입니다. 경관나리가 제게 묻더군요. 고해를 하고 싶냐고요. 그래서 저는 고해까지는 아니지만 할 말이라면 잔뜩 있다고 대답했습죠. 저에게 종교가 있냐고 묻길래 종교는 없지만 성당이라면 어렸을 적에 몇 번 다닌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께서 이리로 오게 되신 거지요. 어쩌면 신부님께 실례가 되는 일을 한 건지도 모르겠군요. 왜냐하면 저는 아직도 신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신이 존재하더라도 그분을 <믿지는> 않는다는 거지요. 사실 몇 번인가 신과 비슷한 것을 만난 것 같기는 합니다. 말하자면 그분의 손길이나 말씀 같은 것을요. 하지만 저는 끈덕지게도 그분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저도 알고 그분도 아시는 일이지만, 신께서는 제 갈증을 대신 해소해줄 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제 손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부님께서도 알고 계실겁니다. 제가 밖에서 저지른 끔찍한 범죄에 대해서요. 그런데도 저를 만나러 와주시다니 참 고맙고도 놀라운 일입니다. 성직자의 소임이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죄를 저지른 사람과 만나고도 구토하지 않는다는 것이 썩 대단한 일입니다. 게다가 신부님은 지금 저와 말을 섞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 하! 사실 신부님께서는 그냥 제가 지옥에 갈 것이라는 한 마디만 하시고 밖으로 나가셔도 됩니다. 하지만 지금 자리에 앉아계시지요. 아무튼 간에, 신부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니까, 저에 대해서요. 저라는 죄인을 말입니다. 이제 와서 회개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씀은 안 하시겠지요. 저는 압니다. 죄인은 벌을 받습니다. 그 벌이 사후세계까지 이어질지 어떨지는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죄가 벌을 끌고 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사형마저도 당연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쉽지는 않냐고요? 글쎄요, 아쉬움이라. 아쉬울 만한 것이 딱히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 느끼는 아쉬움이란 삶에서 못다한 것이 있을 때 느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아시다시피, 남들이 도무지 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짓까지 저질렀지요. 그리고 그것은 저를 삶으로부터―견딜 수 없는 삶으로부터 말이죠― 구원해주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구원이요! 저는 구원받았습니다 신부님. 오만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설령 이 죄로 인해서 지옥 유황불에 빠지게 된다고 하더라도 저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짐승에게는 짐승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에게는 그 인간만이 찾을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있어요. 도덕과 윤리를 모두 떠나서, 나는 배가 고팠던 것입니다. 그 아이들은 불쌍한 먹잇감이었어요. 제게는 도덕도 윤리도 신도 없었기 때문에 먹잇감을 먹어치운 것이고요. 신부님, 당신이 믿는 신은 인간에게 허기와 갈증을 불어넣었습니다. 법이니 도덕이니 하는 것들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비대해져버린 환상이예요. 아니, 그것은 환상의 환상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환상을 지키는 환상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들은 모두 야생동물이고 육식동물입니다. 무엇을 믿습니까? 내게는 날카로운 송곳니와 발톱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허기진 것을 알고 있어요. 우리가 야생동물이라는 것을 인지해야합니다. <가치>라는 것은…… 피투성이의 송곳니 속에 있어요. 아, 이런. 논리가 점점 비루해져가는군요. 죄송합니다. 저는 당신을 설득하려던 게 아니예요. 그냥 내가 믿는 단 하나의 것을 설명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당신은 내가 죽고 난 뒤에도 살아가겠지요. 그래서 당신에게 말해두고 싶었던 겁니다. 나는 이러한 가치를 믿고 살았고, 그래서 죄를 저질렀다고요. 몇 번이나 말하는 거지만 저는 저의 죄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벌을 받고 말 거예요. 이미 받고 있기도 하고요. 누구에게든 말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사실 목사도 좋고 중도 좋고 다 좋았지만, 목사는 좀 무섭더군요. 다짜고짜 제 얼굴에 십자가를 집어던질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중은…… 뭐라고 할까요, 솔직히 머리를 빡빡 민 사람을 상대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그리고 어렸을 때 아버지랑 성당에 갔던 것이 기억나서 말입니다. 지루했죠. 자꾸 섰다 앉았다 하면서 아멘 아멘 외치고, 하나도 재미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냥 그때가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신부님을 뵈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한, 신부님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이었거든요. 저도 좋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저라고 무슨 괴물이 아니예요. 남들이 기뻐하는 것에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흠…… 하지만 남들이 슬퍼하는 것에 슬퍼하지는 않는군요. 놀라셨습니까? 저도 그정도 자기 객관화는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제가 죽어도 슬퍼할 사람은 없겠지요? 아버지가 가엾습니다. 아들이 흉악한 살인자로 교수대에서 생을 마치다니, 이미 죽기는 했지만, 그 남자는 불행해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다 지은 죄대로 가는 겁니다. 아버지는 죄를 짓지 않았지만…… 글쎄요, 어쩌면 아버지도 죄를 지었을지도 모르죠.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최 기억 나는 것이 별로 없어요.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가 안아주었던 것은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저는 아버지의 등 뒤로 어머니를 보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아주 화가 난 눈치였어요. 저를 노려보고 있었죠. 저는 울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뭐라고나 할까, 어머니에게 원망 받는다는 것이 슬펐어요. 그냥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이미 다 잊혀진 감정이지만요. 부모님을 생각하면 항상 그 여름밤의 기억이 떠올라요. 축축하고 습기찬 여름밤에, 노란 가로등이 비추고, 저는 아버지에게 안겨있고, 어머니가 원망과 질타의 눈빛으로 저를 노려보고, 저는 소리도 없이 울고 있고. 그 장면이 언제까지고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겁니다. 하! 이것 참. 하지만 이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예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흔하디 흔한 가정사의 비극들 중 하나죠. 저는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냥 이제…… 교수대로 걸어갈 일만 남았죠. 교수대로요. 그리고 죄값을 치르는 겁니다. 저는 썩지 않을 거예요…….
어쩌면 저는 약간 맛이 간 놈일지도 몰라요. 그럴지도 모르죠. 어쩌면 많이 미쳤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신부님. 저는 미친게 아닙니다. 저는 부모도 없이 어딘가 시꺼먼 지옥의 구덩이에서 혼자 기어올라온 악마나 괴물이 아니예요. 저는 그저 발견한 겁니다. 무엇을 발견했냐고요? 생존하는 법입니다. 영혼의 굶주림을 견디다가 잘게 부스러져 사라지지 않고, 하나의 완전한 생명으로 빛나는 방법을 발견한 겁니다. 신부님, 신부님. 결국에는 말이죠, 신부님, 모두가 저처럼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미친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원칙을 발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