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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te - Hex

기록/음악 2010. 7. 22. 19:55 |
 밴드 Hate의 2005년 앨범, <Anaclasis, A Haunting Gospel of Malice and Hatred>의 3번 수록곡 Hex.

 밴드 Death의 중심인물 척 슐디너가 병으로 죽은 2001년.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데스메탈은 21세기로 접어들면서 그와 함께 죽어가고 있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 사이에 생겨난 데스메탈 밴드들을 제 1세대라고 말한다면 90년대 중후반에 생겨난 데스메탈 밴드들을 제 2세대라고 말해야한다. 문제는 그 '제 2세대'들이 태어나질 않았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어나긴 태어났으나 그 밴드들이 대부분 '데스메탈 밴드'가 아니었다. 제 1세대 데스메탈 밴드들의 전성기가 끝나자마자 그들이 만들어놓은 엄밀하고 과격한 사운드는 대중성과 손을 잡고 '멜로딕 데스메탈' 밴드가 되거나 자기 장르의 태생적 한계를 느낀 블랙메탈, 그라인드코어 밴드들과 융합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브루털 데스메탈'이라는 더 강한 과격성을 지향하는 장르도 만들어졌으나, 끊임없이 지저분한(?) 리프 한두가지만 반복해대는 안이한 곡구성 때문에 완급조절에 실패하여 오히려 '덜' 과격해지고 만 경우들이 대부분이니 브루털 데스메탈을 데스메탈의 진화형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멜로딕 데스메탈로 말할 것 같으면, (물론 주관이지만)데스메탈에서 파생된 장르라기보다는 차라리 파워메탈에 데스메탈적인 보컬만 붙여놓은 장르로밖에 보이지 않는지라 장르조차 같은 궤에 있지 않은 두 음악을 비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예 언급을 안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블랙메탈과 데스메탈이 융합한 경우에는 즐기기에는 충분하나 어쩐지 깊이가 없는 밴드들이 대부분이고, 그나마그라인드코어와의 융합이 Carcass처럼 성공적인 결과를 낳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처음에 말했듯이, 이것들은 분명 변형이거나 합병이고 제 1세대 데스메탈 사운드를 충실히 이어받아 발전시키고 있는 밴드들은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의 수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그 대표적인 예로 Bloodbath나 Hate등을 소개하려고 하는데, Bloodbath는 그렇다 치고 Hate가 장르 나누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데스/블랙메탈 + 인더스트리얼 메탈'이라는 정체불명의 장르로 평가되고 있는 모양이다. 블랙메탈의 이름이 들어간 것은 아무래도 쉴새없이 두드려대는 드럼의 박자 쪼개기가 블랙메탈의 형식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인 것 같고, 인더스트리얼은 효과음을 사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흡사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런 짬뽕장르로 이름이 정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정작 곡을 들어보면 과거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현재는 그저 잘 만들어진 '현대적 데스메탈'일 뿐이고 블랙메탈이나 인더스트리얼 메탈의 낌새는 거의 보이지도 않으므로 나는 Hate를 그저 '현대적 데스메탈 밴드'라고 칭하고 싶다.
 서문이 너무 길었는데, 곡 자체에 대한 얘기로 들어가자면 우선 Hate는 사운드부터가 무척 단단하고 꽉 찬 느낌이 든다. 뭐 하나 빠지거나 과도하지 않게 밸런스를 잘 잡아놓고 고음량으로 감각을 살려놓으니 벌써부터 그들의 음악에 호감이 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관적인 주제 밑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변칙적 구성이나 트윈기타의 치고 빠지는 절묘한 호흡이 더욱 곡에 정신을 빠트리게 만든다. 보컬 또한 낮게 긁어대는 브루털적 그로울링의 형태를 취하고는 있으나 브루털의 그것처럼 지독하게 저음으로만 꿀꿀거리는 바람에 오히려 청자를 황당하게 만드는 짓은 하지 않고, 보다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명확하며 고저의 변화가 자유로운 방식으로 박력있게 내질러준다. 한마디로 줄여 말하자면 이들은 좋은 음악을 만드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척 슐디너의 죽음과 함께 데스메탈도 죽었다고 할 수 있느니 하며 극단적인 말을 했지만 어떻게 보면 '정통 데스메탈 밴드'라는 타이틀을 얻기가 어려운 것 뿐이지 장르의 맥이 끊긴 것은 아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90년대 초반이라고 해서 실력있는 데스메탈 밴드가 발에 치일 정도로 많지는 않았던 것이다. 워낙에 마이너하면서도 다소 엘리트주의적인 성격까지 엿보이는 장르의 특성 때문인지 데스메탈의 진보를 이끄는 것은 항상 소수이거나 심지어는 '개인'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현대 데스메탈계에서 Hate는 단연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그 '소수'들 중 하나인 것이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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