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생각

자해에 대하여. 그리고 위대함에 대하여.

Lim_ 2011. 7. 21. 21:04
 과도한 감정에 빠져들어서는 안된다. 고뇌에 취해버려서도 안된다. 차라리 그것을 하면서 웃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고통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동시에 행위의 근거에도 또한 고통이 있다. 과도해서는 안되지만, 사실 미리부터 행위는 과도하게 흘러넘치는 감정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포화 이후의 절제. 기묘하고 애매한 균형이 있다. 언어화 할 수 없는 언어처럼.
 사실은 그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내가 병적인 결핍상태에 있다는 것을 묵묵한 침묵 속에서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독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 차라리 일종의 병에 전염되는 것과 비슷하다. 형태지어진 타인이라는 존재는 내 존재성 속에 퍼지는 독극물 같다. 달팽이는 자신의 연하디 연한 살을 딱딱한 껍질 속에 감춰두고 산다. 병을 두려워하는 탓이다. 감상주의자들의 불쾌한 내면과 접촉하는 것이 싫다. 그들의 정신은 독과 같고 전염병처럼 추하다. 자기자신의 구역질나는 체액에 잠겨 천천히 익사해가는 그들을 향하여 나는 증오와 혐오의 문장들을 수도 없이 써낼 수 있을 것이다. 사방으로 손을 내밀어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스스로의 병증에 취하여 만족해버린 익사자들. 나는 그들의 따귀를 때리고 그들이 반드시 있어야 할, 깊고 깊은 바닷속에 처넣어버리고 싶다. 당신들의 손은 역겹다. 당신들의 끈적거리는 외로움만큼이나.

 나의 세계 안에서도 오만가지 시각들이 있다. 그중 어떤 눈은 나를 보지 못한다. 그는 나라는 존재를 세계에서 발견해낼 수 없다. 그에게 있어서 내가 너무나도 작기 때문이다. 그 누구에게도 영향력을 끼칠 수 없는 나는 광막한 세계 속에서 간절히 바란다. 내가 세계의 일부의 일부의 일부라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기를. 그러나 개인이라는 것은 늘 시간 속에서 패배해왔다. 염세주의나 패배주의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개인은 늘 시간 속에서 패배해왔다. 승리하는 개인이란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모든 개인은 패배한다. 그 자신이 그러한 결말을 알고 있든 알지 못하고 있든, 아무튼 간에 개인의 종말에는 패배밖에 놓여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설령 내가 가는 길의 끝에 허무와 사멸이라는 진실밖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나는 꾸준히 발걸음을 옮겨야만 한다고. 그 누구도 결과적으로 승리할 수 없는 세계에서-승리하는 것은 언제나 세계뿐이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할지, 내가 언어를 알기도 전부터 그 의문은 항상 내 존재를 지배해왔다. 그런데 보라, 나는 위대함을 알지 않는가? 위대함이라는 단 하나의 빛줄기를 알고 있지 않은가. 허무주의자들이 말한다. 모두가 패배하는데 위대함 같은 것에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느냐고. 상관 없는 일이다. 소유와 무소유로만 사물의 상태를 인지하는 것은 안될 일이다. 위대함은 가지는 것도 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향하는 것이다. 나는 길 아닌 길을 발견한 것이다. 끝에 가서는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완전하게 사멸해버린다고 하더라도, 절망적인 반항의 얼굴로 나는 위대함을 향하여 걷는다. 필멸자인 내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갈구란 바로 그것이다. 나도 죽음을 보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 중 하나인 그가 죽는 것도 보았다. 그의 존재가 사라지고, 갈망해왔던 모든 가치들로부터도 외면당하고, 마침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서 미래도 과거도 없는 멸망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가 아무리 죽음에 반항하며 삶을 향해 손을 뻗어도 죽음이 그를 집어삼키고야 말았다. 그것이 결말인 것이다. 아무것도 갖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것. 그런데, 이것 외에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영원? 아니다. 영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어떤 관찰자도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실제 구조와는 상관 없이, 영원은 우리들의 눈과 귀로 말미암아 사라지고 만다. 내가 본 것은 필멸자의 위대함이었다. 죽어 없어질 수밖에 없는 자가 반항의 몸짓으로 허무 속에서 끄집어낸, 한없이 순수하고 명백한 공허. 세차게 이마를 때려대는 햇빛과도 같은 감각뿐인 존재. 한순간뿐인 열파. 폭발하는 순간 태어나서 곧바로 사라져버리는 먹먹한 실재. 흔적도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왔다가 가는 계절. 그것이 바로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세계가 우리들에게 넌지시 알려주는 유일한 삶의 방법인 것이다. 인생은 소모하는 것. 생명은 한순간의 불꽃을 위한 연료나 다름없다. 그리고 명백함과 광막함으로 이루어진 폐허 속에서 섬광으로 번뜩이는 것. 도착할 수 없는 목적지. 열광의 활주로. 위대함으로 가는 길.
 그는 죽었다. 그리고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