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생각

어느 모호한 과거와 틀림없는 현재에 대하여.

Lim_ 2011. 3. 11. 02:14
 오늘도 내일도 없이, 그저 낮과 밤이라는 기계적 순환으로만 시간의 흐름에 경계선을 긋던 그때를 나는 어떤 표정으로 기억하는가? 나는 몽상과 환각으로만 하루를 빼곡히 채색했다. 미래라는 것은 마치 시체처럼 창백하고 기력없는 모습으로 저 멀리에 서서 내게 오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으며, 나 역시 미래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시간은 단단히 문이 닫혀있었고, 내 방의 공기는 두텁게 얼어붙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박제된 시체처럼, 나의 작고 문이 잠긴 방은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방 바깥의 살아 움직이는 것들과는 접촉하지도 손을 잡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나의 고형화 된 공간은 꼭 홀로 영원할 것처럼 나를 감싸 안았던 것이다. 그 마음 편한 추위 속에서 나는 외로움도 몰랐다. 환상은 현실보다 컸고, 완벽했으며, 또 외롭지 않았다. 나는 곰팡이 핀 벽지에 둥글게 만 몸을 기대고 웃는 법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보지 않고 있더라도 시간은 흐르고 상황은 변하는 법이었다. 나는 벌거벗겨진 채 햇살 찬란한 텅 빈 거리로 끌려나왔고, 갑작스런 위협에 얼떨떨해진 채 겁에 질린 눈동자를 굴렸다. 내가 아무리 일상의 굴레라는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몽상으로 내 존재의 목을 축이더라도 영원이라는 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던 것이다.
 지금 나는 내가 자신으로부터 한발짝 떨어져나왔다는 것을 느낀다. 이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나는 내게 익숙한 표피를 벗어버리고 세찬 겨울바람이 휘몰아치는 거리에 서있는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이곳에는 진정으로 위안이 없다. 나태는 사실 단 하나의 달콤한 꿈이었는데─정말이지 그것은 꿈이라고 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나는 과거로부터 미래에 향하는 시간과 만나고 나태의 가능성마저 빼앗겨버린 것이다. 이것은 어떠한 도덕적 잣대로도 평가할 수 없는 일이리라. 나태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말로는 포기라는 것이 있다. 이것도 언젠가 이야기했던 관념이다. 무언가가 바뀌었다. 커다란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산산조각난 나의 시체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생명이 흐르는 나의 비극적인 살과 근육들을 내려다본다. 나는 외로움을 느낀다. 예전보다도 훨씬 깊게, 더 본질적인 의미의 외로움을 말이다. 나는 구원이 없는 땅에 발을 디디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아마도 태초부터 이 땅에는 확신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것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러나 달라진 점은,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야한다는 것이다. 어떤 미래들이 어떤 사건의 모습을 하고 내 코앞으로 쏟아져내릴지 나는 참으로 손톱만큼도 알지 못한다.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줄 어떠한 도구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도 나는 인간의 감정을 가슴 한가득 안고 이 황폐한 대지 위를 기어야하는 것이다. 나의 단단한 방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을 적에는 세상의 광막함에 굳이 시선을 붙이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것들이 변했다. 나는 우울에 만족하지도 못하고, 이미 한계까지 차오른 눈물샘을 짓누르며 소리를 지르고 싶다. 아우성치고 비명을 지르고 싶다. 내 속에 생명이, 열망이 흐르기 때문이다. 또 내가 멈춤 없이 기어야하기 때문이다. 이 끔찍한, 그리고 필연적인 고통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가장 완벽한 표현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도대체 뭘 가지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목표해 마지않는 것을 향하여 사지를 움직여야하는 것이다.
 이 새카만 밤에, 나는 정말이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누군가에게 내 손을 잡고 나를 일으켜달라고 진심을 다하여 부탁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혼자다. 이것은 절대적인 사실이다. 나는 혼자다. 그리고 혼자인 채로 살아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