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생각

2010년 9월 29일 수요일.

Lim_ 2010. 9. 29. 14:11
 의사가 내게, 어쩌면 나에게 있는 절대 선에 부합하려는 열망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평균적인 것보다 훨씬 강했었을 것이며 혹은 지금도 여전히 강하리라고 말했다. 나는 울 것 같았다. 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눈물샘에 뜨거운 감정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웃었다. 새빨간 눈을 하고는 누군가를 조롱하듯 웃었다.
 하지만 나는 도덕을 믿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도덕을 믿지 않는 인간이 되어야만 했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덕을 믿든 믿지 않든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체취가 섞인 숨을 사방에 토해놓고 있었다. 그 냄새가 내 코를 타고 기어올라와 기도에 눌어붙었다. 기도 표면에서 따끔거리는 아픔을 느꼈다. 내 옆에는 지독하게 가난할 것이 틀림없어보이는 어떤 중늙은이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에게서는 달큰한 소주 냄새가 났다. 겨우 오후 한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나는 그의 황달끼가 보이는 피부와 주름이 진 채 늘어진 눈살을 보았다. 그가 나에게 적의를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팔을 잡고 '나는 정신병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할 뻔했다. 나는 거의 정신이 나가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 병든 머리를 남에게 들키기 싫어하는 마음은 남아있었다. 그래서 나는 경련하는 영혼을 억지로 집어삼키며 그의 팔뚝을 향하던 손을 거두어들였다. 나는 슬펐다.

 병원 문을 열고 나올 때 나는 굉장히 음산한 기분에 젖어있었다. 의사가 나를 정신병자로 생각하리라는 생각 탓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정신병원이었고, 이미 수개월도 전부터 나는 그 병원을 들락거렸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나는 의사에게 한가지 고백을 했다. 십수년도 더 된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죄책감에 대한 이론을 늘어놓다가 그 '고백'을 말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말해버린 것이다. 의사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러나 통찰력과 정신병리학적 공식이 빛나는 눈으로 내 고백을 듣고 그것을 분석했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병들어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졌다. 나는 병들어 있지 않습니다. 나는 어쩌면 건강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내가 지극히 건강할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그러나 나는 아무 말 없이 처방받은 약을 집어들고 나왔다. 심장을 면도칼로 썰어내는 것 같았다. 간호사는 나를 보고 친절하게 웃었다. 나는 가능한한 가장 점잖고 정상인 같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내가 처음으로 병원에 발을 들여놓은 그날부터 계속 그 간호사는 내가 병든 머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평소 같으면 그녀의 웃음에 부아가 치밀어올랐을 텐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중금속처럼 무거운 우울이 내가 활발하고 공격적인 감정을 가지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무엇을 기대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거리로 나와보니 오만한 젊음과 비참한 늙음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있었다.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