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시

여기 나는 그럴듯한 존재가 되기 위한 모든 의욕마저 잃은 것 같으다 그러나 지금이 새벽 다섯 시라는 사실만은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Lim_ 2025. 3. 4. 21:04

여기 나는 그럴듯한 존재가 되기 위한 모든 의욕마저 잃은 것 같으다 그러나 지금이 새벽 다섯 시라는 사실만은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아직 나는 명확히 기억한다.

 단 하루도, 낮도, 밤도, 새벽도, 한시도
 고함과 욕설로 조용할 날 없던
 술주정뱅이
 삼 층 아저씨
 빌라 모두가 포기할 즈음
 삼 층에 이사 온
 희망 넘치던 얼굴의
 신혼부부.
 경찰이 오고 CCTV 설치되고 언성 높이고
 울고
 반년 후 이사
 떠나고
 어느 하얀 낮
 열린 현관 틈새
 고개 숙인 채, 사회복지사
 둘과 마주하던 삼 층
 아저씨

 언제부터인가 홀로 고요해지고

 언제부터인가 이 층에 쌓여 썩어가는
 배달물들과 현관을 도배한
 우편과 고지서와 광고 전단과
 무관심과 또
 무관심.

 그리고 다시
 언제부터인가
 새벽 두 시부터 오 분 간격으로 현관문부술기세로여닫아대는
 몇 층의
 어느 놈.

 사 층의 나는 언제부터
 덜 미치고 덜 소란해
 졌던 건지

 새벽 다섯 시
 어느 놈이 또
 현관 부숴대고

 일 층에선 청소기
 돌리고.

 문 닫히는 기척도
 아무 소리도 없이
 골목길 끝에
 담배 연기 피워올리고
 전등 나간
 계단 따라
 돌아가는
 시퍼런
 불면의 밤.

 여기는 창동
 우리는
 그들이 모르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