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시

생존을 축하한다고 물질과 활자들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는데 그 와중에 이건 또

Lim_ 2025. 2. 18. 11:03

생존을 축하한다고 물질과 활자들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는데 그 와중에 이건 또


 요새는 뭘 했다고 이렇게 피곤한지
 생각해보면 피곤해하느라
 지쳐 나가떨어져 있던 게
 전부였는데

 그래서, 마침내, 집에서 에서
 아무 때고 습격당하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멍하니

 내가 뭘 하는 사람이었더라
 허공만 쳐다보다
 결국 초점 맞춰진 곳에

 언젠가부터 도무지 정리 안 되는 책장
 보고 있자니 몇 권이
 빠져있는데.

 그래
 그 자식,
 책 빌려 간 채로 절교선언한
 돈 잘 벌고 친절하고 문학적으로 빛이 나던 어느새 결혼해 딸까지 낳았던, 그
 친구였던
 그 자식

 독일 영화감독이, 그린, 만화책, 빌려, 도주한, 그 자식,
 베르너 엔케 있을 자리가
 비어있잖아.

 아니지

 아니야, 그 뒤에 분명 샀었는데
 집도 분열하고 방도 분열하고 책장도 자리도
 있을 곳도 시방으로 분열해
 팔도강산 곳곳으로 흩어져버려서

 뭐가 어디에 있는지
 흩어진 파편들은
 어떻게 그러모으는지

 옘병……

 좀,
 타의적으로 안락을 강요하는 손과 팔과 36.5도가량의 눈물겨운 종족적 애정, 좀
 제발 내게 몰아쳐
 며칠만
 피로로부터
 잠들었으면.

 해야만 했던 일들
 리스트로 붙여놓은 벽 위의 선반 위의 파편 같은 간이책장 위의 빈공간만
 멍청히 쳐다보는
 의식도
 이제 제발 좀,

 그 자식
 어차피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거
 뻔히
 알면서

 빈공간도
 어차피, 활자와 집착으로
 다시 채워질 거
 지긋지긋하게, 틀림
 없으면서

 뭐를 또
 회의하고 있는지
 회의할 거면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