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시

어느 방

Lim_ 2024. 12. 24. 16:44

어느 방


 날이 점점 더럽게 추워진다
 영원토록 가을도 오지 않을 것처럼
 여름이
 발악을 하더니만.

 가족들은
 그간 쓰던 선풍기들 뒤늦게 닦고
 말려
 커버를 씌워 내 방에 들여놓았다
 그렇게 있었다
 꽤 오래

 어느 겨울날 나는 타자를 치기 전
 화장실에서 방광을 비우고
 의자에 앉아 뭐라도  써보려고
 빈 페이지 들여다보는데
 눈이 침침하고
 헛구역질이 나와
 그냥
 앉아있었다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들어와
 커버 씌워진 선풍기들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하여간 장남 방에만 들어가면
 뭐 하나 남아나는 게 없구만.

 몇 개의 커버가
 찢어지고
 터져있었다.

 아버지는 그것들을 보일러실로 옮기고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앉아있었다

 아버지가 나가고
 내가해야만할일들을적어놓은목록
 을
 확인하고
 각막이 건조해 갈라져 가고
 심박이 멈춰가고
 무언가가
 정지하고
 있어

 움직이도록
 해야 했다.

 살얼음 같은 태양이 어느새 파란 하늘에 쨍하니
 이상했다.

 집 앞 편의점 들어서자
 처음 보는 직원은 인사해 오는데
 젊고 명랑하며
 친절한 목소리였다

 필요한 것도 없어서
 마시지도 않을
 커피 한 캔 사는데
 그녀는 내 눈을 보며 미소짓고 영업 매뉴얼에 따른 
 들을 친절히
 건네고 인사
 했다.

 그래서
 나도 인사했다

 테이블에서 막걸리 마시는 노인네들
 바라보며
 이 아가씨 남아나기나 할지
 생각하며
 수염 지저분한 얼굴
 문지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