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가라앉은 대학로 뒤켠 창문 열고 텅 빈 탁자 옆 앉아 내다보다가
태양 가라앉은 대학로 뒤켠 창문 열고 텅 빈 탁자 옆 앉아 내다보다가
술 끊은 게 작년 6월 9일이고
지금이
12월 20일인데, 그러니까
얼마나 됐냐
모르겠네
아무튼 일 년은
지났다.
두통과 죄악감으로 시작되는
담요는커녕 이불도 없는
기상, 오후
관성처럼 뻗은
창백하고 가는 손에 잡히는
엎어진 자리끼 같은
소주병, 더러는 전날 열어둔
맥주캔
방문 열고 나서기 위한
최소한도의
인간성
아주 나쁘고
나쁠 것도 없었다.
밤새 어떤 이들에게 미친놈처럼 전화를
걸어댔는지, 알지 못하기 위해
전화기는 행방불명이고
흉곽이 우그러지고
호흡을 막아 왔는지
그때
알아차린다
참으로 나쁘고
나쁠 것은
뭐……
술병을 다 비우고
마침내 문을 열면
부엌을 보며
느껴야만 했다
얼마나 더 많은 술과
약이
오늘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단위를 위해
필요할지,
편두통과 흉통과 찢겨진, 의식으로,
웃고
웃었다
주머니에 오로지 소주병과
담뱃갑만 움켜쥐고
친구 만나러 가면,
그래, 승호란 놈이 있는데
그놈 참 괜찮아
정말로
친구새끼 하나는
적당히 좀 하라고 정신병자 새끼야
너 나이가 인마
그러다 죽어 개새꺄
그러면 승호가 그랬거든
야, 그만해라 야
술 안 먹으면
못 나온다잖아
술병과 담배만 생명줄처럼 붙들고 나와
승호 그놈이 대신 내준 택시비만
총합 오십은 될 거다
공공교통이란 게
무너져 잔해만 남은 인간을 위한 게
아니거든.
아, 손님 거 좀, 내리고서 드시지.
죄송함다.
택시기사랑 똑같은 말만
몇십 번을 반복했는지.
더이상 무너질 껀덕지도 없다는 게
얼마나 유쾌한지
알 놈들은 알 거야
그래, 그렇지
그리고 진실로
내딛을 발이 없다는 것도.
집 가는 길 차창에 광란하는
가로등-빌딩창문-정신나가조급히-악셀밟고-핸들꺾는
헤드라이트-하이빔 각막 뚫고 들어오는 걸
넋 나간 채 방치하노라면
여기가 뭐하는 곳인가 싶었다
집.
집?
니미
누가 만든 말인지.
돌아오면 책상에는 늘
시집 한 권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그래서
6월 9일
그만뒀다.
아주 나쁘고
나쁠 것도
없었다. 뇌가
고장 났을 뿐.
계속 웃고
쏘다녔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