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생각

20200504

Lim_ 2020. 5. 4. 22:37

20200504


 면도라도 합시다. 평이하지 못한 모습으로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은 충분히 피해망상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외출이라고 해봤자 새벽에 담배 피우러 집 앞에 나가는 것이 전부기는 하지만, 야밤에도 행인은 있습니다. 츄리닝에 쓰레빠 끌고 아버지 재킷 입은 채로 담배를 피우다 보면 가끔 사람들이 지나가기도 합니다. 어째서인지 대부분 젊은 커플입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숨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말이죠, 머릿속으로 ‘나는 숨어있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치 행인들의 그늘진 얼굴이나 눈동자를 쳐다보지 않고, 지저분한 시멘트 바닥이나 쳐다보면 그들이 나를 발견하지 못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일주일 전인가, 밤을 새버려서 하늘이 밝아오는 오전 6시쯤에 여느 때와 같은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 건물 4층의 창문이 열리더니, 아무래도 만취한 것 같은, 런닝차림의 남자가 이상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음정이고 박자고 가사고 도저히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노래인지, 아니면 아침이 밝았으니 소음공해로 같은 동네의 모든 사람들을 깨우고자 하는 건지, 그런 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이 남자가 왜 오전6시부터 술에 꼴아있는 건지, 그건 모르겠고…… 사실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추측도 가능하겠지요. 아무튼 이 남자는 한동안 괴성을 내더니 갑자기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아이 씨, 담배냄새 나잖아. 그 순간 4층의 창문을 올려다보고 있던 저와 그는 눈이 마주쳤습니다. 아저씨, 거기서 담배 피우지 마세요. 어지간히 혀가 꼬인 말마디였습니다. 평소 같으면 그런 술 취한 명령조의 말투에 짜증이 날 법도 했습니다만, 당시에는 의사가 제 분노장애를 치료하려고 리튬을 하루에 4g씩이나 처방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 대답도 없이 조금 위치를 옮겨 내뿜은 연기가 건물 쪽으로 향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위치를 옮기는 도중에도 남자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치 스스로 그렇게 말하는 게 재밌기라도 한 듯, 완전히 조증환자처럼 굴면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시발, 좀 닥쳐. 입에 담배를 문 채로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습니다.

 우울증이 점점 심해져서 상담치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상담치료를 감당할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아무나 붙잡히는 대로 내 증상을 호소했다. 주변에서 사람이 사라졌다.

 요새 영 정서상태가 극악해서 그런지 떨쳐내려고 해도 뇌를 움켜쥐고 있는 생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살에 대한 생각입니다. 처음에야 그냥 어떻게 죽는 것이 간단하고 또한 미니멀리즘하려나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는데, 생각이란 것이 다 그렇듯 고민의 영역이 점점 넓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몇 시간씩 이불 위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천장이나 쳐다보다가 한 생각이라 그다지 명료한 사고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어떤 발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자살은 차선책이다. 최선책은 70억 인구를 전부 죽이는 것이다. 지구 위에 혼자 앉아있으면, 딱히 죽지 않아도 모두에게서 완전히 망각된 존재가 될 수 있다. 가치판단도 기준도 완전히 붕괴하여, 행복도 없고 괴로움도 없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최선책은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아픔과 출혈과 중독으로 차선책을 선택해서, 차라리 이쪽에서 모두를 망각하는 것입니다. 유심론과 유물론이 마치 계면활성제를 탄 물과 기름처럼 혼탁하게 섞여있네요.
 아아, 인간의 책임이라니. 요즈음은 틈만 나면 맥을 짚듯이 목에서 경동맥을 찾곤 합니다. 만약에 고등학교에 진학했더라면 해부학 수업 비슷한 거라도 듣지 않았을까. 아니, 딱히 경동맥의 위치를 외과의사처럼 명확하게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당장 끊어버릴 생각도 없습니다만…….
 돌이켜보면 그렇습니다. 죽을 만큼 비참하다고 해도, 침울한 상태에서는 아무래도 제가 주변사람들에게 진 빚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문장을 수첩에 적는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아침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침대에서 내 시체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곱게 죽은 시체가 아니라, 경동맥이 끊겨있고 한 손에는 날붙이가 들린 시체 말이다. 그들에게 도저히 그런 짓은 할 수 없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뭔가에 대해 마구 화가 나고 아드레날린이 분비 되었을 때, 에이, 빚이니 뭐니 무슨 상관이야, 죽어버릴 테다, 살아도 이미 충분히 죄인이란 말이다. 이러면서 자포자기하기도 합니다.
 자낙스를 세 알정도 먹으면 세계의 윤곽이 조금 더 단단해진다는 것을 아시나요. 아주 진절머리가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