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글쓰기
악한 글쓰기
저에게는 어떤 통제되지 않는 커다란 악의가 있는 것일까요. 오랫동안 수많은 글들을 써왔습니다. 시, 희곡, 에세이, 소설 등 닥치는 대로 써왔습니다만, 대부분 소설이었습니다. 바로 일주일 전 단편소설을 하나 완성했습니다. 사방이 막다른 길인 암담한 골목에 갇힌 것 같은, 한 생활무능력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거의 사소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라는 것은 독자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 것이니, 독자를 찾아다녔습니다. 어쩌다보니 중학생 시절 동창에게 원고를 건네려고 마음을 먹고 연락을 했습니다.
“아니, 이제 네 글은 읽지 않을래.” 동창의 말이었습니다.
“어째서?” 제가 적잖이 당황해 물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하나, 네가 쓴 걸 읽고 있으면 나까지 불행해져.”
말문이 막히는 대답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아무 것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 동창은 2년인가 3년 전 제가 마침내 단행본을 하나 출간할 때 저에게 보태 쓰라며 돈까지 쥐어주던 친구였습니다. 이제 그도 더 이상 나의 불쾌한 활자들을 읽을 여유가 없는 것이로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쾌한 활자들. 그것은 정확한 표현이었습니다.
쓴 것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모든 페이지에 걸쳐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빈곤한 생활을 하는 주인공이 문단마다 죽음을 다짐하고, 자살을 위한 정당성을 찾고 있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생활에서 발견하는 모든 현상에 대해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집에 가자’며 청산가리를 넣은 물을 마십니다. 텍스트 속에 미래에 대한 기대나 희망 같은 건 단 한 줌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다시 읽어보니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름이 없습니다만, 분명히 제 이름을 가지고 있을 것이었습니다.
“잘 쓴 글이지만 읽는 사람을 엄청 불쾌하게 만들어.” 제가 스승으로 모셨던 스님께서 반년인가 전에 했던 말입니다. 당시에는 아, 그런가, 하고 말았지만, 그것이 시간을 넘어와 비수처럼 박혔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쓰는가. 한 가지 짐작이 가는 바가 있습니다. 과거에도 작문이란 내게 정신진통제 같은 것이다, 하며 써놓은 별 가치 없는 일기랄까 기록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사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절망감과 불안감에 휩싸여, 늑골 안쪽이 온통 타르 같은 끔찍한 액체로 가득 차 허파와 심장이 익사하는 느낌을 받는 것이 저의 평소 생활입니다. 그럴 때면 무슨 판단이 서기도 전에 반미치광이처럼 빈 페이지를 꺼내 뭐라도 써야합니다. 주제나 소재 같은 건 뭐라도 상관없습니다. 몇 페이지인가의 절박한 작문이 끝나면, 가슴 속의 타르는 어딘가로 빠져나가버리고 없습니다.
아마 작품을 만드는 것도 이런 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건 아무래도, 가슴 속에 있던 그 ‘타르’를 하얗게 아름다운 빈 페이지에 쏟아부어버리는 게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작품이 완성된 뒤에 문학은 독자가 있어야 성립되는 것 운운하면서 독자에게 원고를 건네는 일은, 이건 그야말로 악의적인 행위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제게 괴로운 일이 있다면 털어놔봐, 이런 친절을 보이지 않았는데, 제가 일방적으로 고통과 절망을 사람들에게 집어던지고 있는 꼴입니다.
왜 자각도 못하고 이런 악랄한 짓을 하는지, 아아, 새삼 수치스럽다. 그러나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앤드류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래저래 9년 정도 함께 술을 마시며 어울린 친구입니다. 한국어 능력은 일상회화 수준에서 머물러있습니다. 당연히 제가 쓴 소설이니 수필이니 하는 것들도 절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는 항상 제 글들을 출력해서 가방에 넣고 다닙니다. 여유가 있을 때마다 꺼내서 한영사전과 함께 읽어본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평생을 통틀어서 이 앤드류라는 한국어 능력도 명확하지 못한 외국인이 제 문학의 가장 큰 독자인 것 같습니다.
“네 글엔 한자어가 너무 많아. 빌어먹을 한자.” 이렇게 매번 하는 소리를 영어로 중얼거리다가, 어느 날 앤드류의 자택에서 함께 지독하게 취해있을 때, 그가 가방에서 꺼낸 몇 년은 족히 됐을 제 단편소설 인쇄본을 흔들며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넌 세상에 대고 고함인지 비명인지를 지르고 있는 거야. 그렇지?”
예상치도 못하게 웃어버렸습니다. 그런가, 그럴지도, 젠장, 그런 거겠지. 너밖에 독자가 없으니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어쩐지 평생에 처음인 것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술을 마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