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살이
겨울살이
아무래도 슬퍼하는 것이 내 평생의 과업인가 싶다. 돌이켜보자면 쓸쓸하면서 약간은 가슴이 아픈 이러한 심상에서 나는 일생 벗어나본 일이 없는 것이다.
오늘은 카페에 가는 길에 아파트 창문에 걸린 현수막을 보았다. 사설 어린이집의 현수막이었는데, 그 어린이집 이름은 꿈쟁이 어린이집이었다. 물론 작명가는 아무 생각이 없었겠지. 그러나 과연 어린아이들은 미래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인가. 그 꿈은 언제까지 날개가 돋아 있다가 수억 차례의 절망과 싸우거나 뜯어 먹히거나 하는 것인가. 아이들이 무구한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싫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이미 꿈도 미래를 기대하는 기력도 과거에 놓고 온 산송장이라고 생각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2월의 겨울바람은 코트 안으로 마구 침입해 들어왔기에, 나는 진흙을 입에 문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카페에 가는 것을 그만두고, 캔커피나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슬픔과 우울은 항상 이런 식으로 기척도 예고도 없이 잠입해 들어온다. 뱀이 되고 싶구나. 땅 위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뱀처럼 살아가고 싶다. 게다가 그 냉혈동물이라면 세상만사에 괴로워하며 마른 침을 삼키는 이상한 존재가 되지도 않겠지. 생각해보면 어떻게 슬퍼하든 광란하든 살아간다는 것은 발자국을 남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슬픈 것일 터다. 분명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의 마음에 이상하고 불쾌한 흔적을 남겨놨기 때문에.
망각을 죄로 아는 종족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발밑의 행성이 거대한 무덤이라는 것을 기억해서, 죽지 못한다.
담배꽁초를 버릴 때, 필터가 썩지 않는다는 것이 슬퍼. 내가 죽고 나서 몇 백 년이 흐르더라도, 누군가가 필터를 보고 생각할 거란 말이야. 담배 같은 것에게 의지하던 놈이 있었구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술버릇이 하나 있습니다. 술에 취했을 때만 아름다운 꽃봉오리 같은 인간애가 가슴에서 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에게는 그리 거추장스러운 일이 아니었겠지요. 그는 원래부터 사람을 사랑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밤의 길거리에 노란색 가로등이 켜지는 것만 봐도 억울함에 눈물을 흘리는 나는, 이것이 마치 꽃잎에도 가시가 돋은 괴기스러운 장미 같습니다. 혼자 술잔을 몇 차례 비우면 비틀거리며 불 꺼진 안방으로 가, 그림자 밑에서 자고 있는 가족들을 바라봅니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 대한 애정이 갑자기 내 안에 피어나는 것에 당황하여 스스로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죽어버릴까, 사랑 같은 건 모르겠으나 저들의 사랑에 기생하여 살고 있는 나 같은 놈은, 하는 것입니다.
어느 가게 앞에 앉아있는데 아이가 하나 지나갔다. 겨울이라서 두꺼운 옷으로 몸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혼자 거리를 나다닐만한 나이가 아니었다. 왜 혼자 뛰어다니지, 했는데 뒤쪽을 보니 마찬가지로 두꺼운 옷을 입은 젊은 어머니가 따라오고 있었다. 아이가 아무리 뛰어다녀도 서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이가 마구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하늘로 휙 증발해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가진 것은 세 사람 중 나밖에 없었다.
나는 안도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