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ideal(egloos)

2009/12/02 - 나는 현대미술과 섹스를 해야만 하겠다. 가학적인 도착증으로.

Lim_ 2010. 7. 9. 13:59

나는 살덩어리가 된 햇살을 사랑한다. 폭력성의 태양을 사랑한다.
그것들을 실제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활자 속에서 숨겨진 채 빛나는 삶의 비극성을, 그 비극성의 핏물흐르는 냄새를 사랑한다.
의도가 담기지 않은 작렬하는 사상을 사랑하고 그것이 나를 찢어놓았다.
육화된, 완전한, 가득 채워져 비틀거리는, '진지한' 삶의 인간.
완전한 강자. 살인자. 한없이 순수한 적. 인간의 근육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러나 너희는 무엇인가? '현대'의 이름을 붙인 의도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태양도 살덩어리도 피냄새도 나지 않는, 시체도 아닌 '의도'들은 무얼까?
의도로만 가득한 것들은 예술이 아니다. 그것은 코미디거나 혹은 정치다.
둘 다 일 수도 있다.
벽돌담 뒤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이고 바다가 없는 도시다. 사람들이 '진지함'을 두려워하게 만든 원인이다.
언제부터 사람들은 '의도'를 알게 되어 진지함을 두려워하게 되었나. 언제부터 그들이 항상 불안한 웃음으로 자신들의 치졸한 바닥을 숨기게 되었나.
그 끔찍함을, 섬광이 없는 작품들에게 책임을 물을까. 아니면 병원과 감옥을 지은 사회에게 책임을 물을까.
태양 대신 구름에 가린 조명장치만을 알고 있는 '시대'의 탓인가?
너무 많은 것들을 떠올리고 너무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나는 단단한 척추를 부정한다.
지저분한 사회성을 부정하기 위한 지저분함. 자신이 어디에 서있는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 혁명가들. 말이 많은 사람들. 할 말이 많은 사람들. 기계도 과열이 된다. 피가 돌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열이 오른다.

 이미 사방이 어둑어둑해져 거리마다 가로등을 켜지 않는 곳이 없었으나 하늘은 여전히 파랬다. <사방>은 어두운데, 하늘은 <파랬>다. 나는 깊고 시커먼 물웅덩이 위에 한강철교를 경계선으로 칙칙하고 파란 <바닥>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 바닥. 하늘이라고 불리우지만 하늘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하고 생기없는 것. 아아, 태양이 뜨지 않으려나. 태양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한강 위에 깔린 암스테르담에 짓눌려 가슴을 부여잡고 구역질하는 나를 위해 태양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태양이 뜨면 그 새햐안 광선 아래로 온통 말라비틀어지고 부서져, 소금덩어리처럼 번쩍이는 광활한 사막이 <사그라지듯이 태어났으면> 좋겠다. 그러면 사막에 반사된 태양의 살덩어리들이 하늘에 부딪쳐, 당장이라도 자살할 것 같은 지금의 하늘은 후둑후둑 부서져 추락하고,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끝>을, 삶이라는 열광적인 비극 끝에 있는 <아무것도 아닌 희열>을 보여줄텐데. 대낮의 열기 속에 녹아버린 전봇대처럼, 일년 중 하루도 구름이 끼지 않는 하늘 아래 놓인 형장의 공기처럼. 그 냄새를, 그 절대적인 비극과 '끝'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끝>의 냄새를 갈망한다. 소금덩어리처럼 번쩍거리는, 새하얀, 태양의, 절대의, 머릿속을 새하얗게 틀어막는 폭력적인 빛을, 섬광을, 비극을, 끝을, 희열을, 아름다움을……
 내가 이 깊고 시커먼 물웅덩이 속에서 흩어져버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