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시
반성
Lim_
2017. 5. 21. 21:16
반성
햇살이 산사를 몹시 빛나며 흐르게 하는가 싶었더니
순식간에 밤이 내렸다
초여름의 개구리 우는 소리와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소리가
새까만 산사에 울리는데
나는 높고 외롭다 더러는
곧 높고 외로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으로 털레털레 오기 전 손수 도끼를 들어
내 발목과 손에 난 두꺼운 줄기들과 잔가지들
전부 쩔꺽쩔꺽 끊어버렸다고 나는 그리 생각했었다 그런데
마침 날개미들의 번식철, 산사 곳곳에
커다란 검은 반점 같은 수개미들 시체가 산처럼 쌓인 걸 보니
심장에서 뻗은 잔가지들은 그대로였는가
슬픔은 이미 걷어내었는데도 향 연기처럼
슬그머니 피어오르는 절망에 나는 뒤척거린다
뒤척거리면 이때다 하고 수마睡魔가 내게 이빨자국을
깊고 흉한 이빨자국을 내니 이것이 가장 큰 불편이다
잠에서 깨어야 눈을 뜬다는 사실은
세 살배기도 아는 일일지언데!
게다가 외로움이 달겨들라치면 앞도 안 보고 눈을 감던
내 도시에서의 오랜 나쁜 습관이 또한 방해다
외로움이 난장을 까는 일은 주로 대낮의 지하실에서 있으니
나는 십 수년간을 밤에만 살아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나쁜 습관도 내 쓸쓸함에 몹시 불편하다
그래도 오늘은 눈을 떠야겠지―하며 몇몇
내게 치명적인 싯구와 영혼의 강령들을 피부 위에 새기니
북으로 간 시인에게 내가 배운 것처럼
필시 높고 외롭고 쓸쓸해져야 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