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아의 여행
사생아의 여행
1.
내가 무얼 하고 있었더라. 아, 그렇지, 삶을 살고 있었지. 질리지도 않는 자기발견의 영원순환. 그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이었지. 이걸 봐, 네 유년기에서 조르바가 웃고 있어.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어. 난 삶을 써내고 있었지. 난 인간가죽으로 표지를 입힌 일종의 서적이 되었고, 지식과 서술과 연구가 내 영혼을 대체했어. 몇 해 전인가 스승께서는, 그런 것들은 근대에 멸종해버렸다고 하셨지. 그러나 아니었어. 나를 봐, 이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생생한 종이가 서로 마찰하는 소리가 나는 실감나는 환영이야. 현대에게 아무것도 빚진 것이 없는 돌연한 근대의 사생아야. 많은 젊음들이 나와 첫 악수를 나누고 항상 하는 말은: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자유롭습니까?> 아하! 세상에 아무런 진리도 없다지만 난 한 가지 진실을 알지. 세상에게 아무것도 빚진 것이 없는 진정한 자유란 살아있는 것만으로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이야. 만일 자유의 진실 된 얼굴을 그들이 본다면 그 누구도 자유로운 영혼이나 삶 따위는 바라지도 않을 걸. 그런데
내가 뭘 하고 있었더라.
2.
몇 주간의 휴가가 주어졌다
내 손이 일을 멈추자마자 난 도망자처럼 급히 외투를 걸치고
지구의 반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내가 수면제의 환각에 몽롱해 할 때 내 몸은
어느새 하루를 거슬러 올라갔다.
나는 단지 몇 주를 위하여 내가 나의 두 손목을 잘라냈다는
그러한 생각에 미쳐 기뻐 날뛰었다
지구의 반대편은 사방이 넓고 평평한
인간의 목숨 따위는 단 한 번의 손짓으로 스러지는 위험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 위험 덕분에 나는 기름으로 칠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나의 친구가 길을 알려주었다
더 깊은 대륙의 한 복판으로 가
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바라마지않던 태양과 모래가
거기에 있을 거야.
과연 그것은 거기에 있었다.
나는 석유의 냄새를 흠뻑 맡으며
오로지 흰색뿐인 태양 아래서 도대체 얼마동안이나 서있었던가
곱디고운 하얀 모래는 내 맨발을 묻고 발목까지 올라 찼다
그런데 내가 울었던가?
아니야! 사막에서는 일체의 수분이 모두 금지된다.
그래서 감상주의자들이나 허무주의자들은 사막으로 가지 않는 것이다
습기 차고 울적한 도시의 지하실에서
그들은 술잔이나 부딪히며 허망한 인생에 건배를 외친다
마치 내가 도시에 있을 때 매일 그렇게 하듯이.
눈물은 휴가가 끝났을 때에나 뒤늦게 굴러 나왔다.
잘라냈던 손목은 나도 모르게 다시 붙어 있었고
내 다리는 당장이라도 꺼질 것 같았다.
「나는 인생을 증오해.」 분명하지 않은 발음으로 나는 변명했다.
그래, 여행은 어땠나?
글쎄요. 벌써부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일>을 쉬었었다는 것은 알아요.
이 땅으로 돌아오니 나의 손이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전투태세에 든 군인처럼 손목에 붙어있더군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자네는 이곳에서도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어,
이 게으르고 궁핍한 무정부주의자야.
아니, 나는 분명히 <일>을 했습니다. 차라리
<일>에 미쳐 살았습니다.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당신들은 절대로 모를 거예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내 손이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 당신 같은
왜소하고 등이 굽은, 탐욕스러운 사상가들은 말입니다.
터벅터벅, 무거운 구두를 이끌고 나는 돌아간다.
처음부터 텅 비어있던 트렁크를 끌며
나의 다락방, 나의 <일터>로 돌아간다.
어느새 이 땅은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