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명령하지 않은 세계
누구도 명령하지 않은 세계
누구도 나에게 비참하라고 하지 않았다.
누구도 나에게 고통 받으라고 하지 않았다.
누구도 나에게 절망 속에 살라고 하지 않았다.
누구도 나에게 고독하라고 하지 않았다.
누구도 나에게 싸우라고 하지 않았다.
누구도 나에게 명령하지 않았다
내 갈비뼈를 깎아 단도를 만들라고
눈동자 속에 공허와 혐오를 담으라고
피 흘리는 만큼 피 묻으라고
하얀 피부들 위에 잉크를 새기라고
누구도 나에게 명령하지 않았다.
내 유년기의 거대한 찢어진 흉터도
내 소년기의 추위와 배고픔도
내 청소년기의 방랑과 발작도
내 청년기의 증오와 분노도
오로지 나에 의한 나만의 것이다.
전부 내 것이다. 전부
괴악망측하게 뒤틀린 내 영혼의 끄트머리의 한 조각조차도
아무에게도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계몽하지 않는다 나는 설파하지 않는다
나는 공유하지 않는다 나는 교육하지 않는다
누구도 명령하지 않은 내 고독으로
고로 나는 더욱 철저하게 고독해졌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내 고통으로
고로 나는 내 일생의 모든 순간에 가장 끔찍하게 고통 받는다.
그리하여 나는 나 혼자만을 위한 거대한 성을 지었다.
내가 나의 복수를 위하여 나의 앙갚음을 하려 들면
당신들은 드디어 내 망할 얼굴가죽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드디어 당신들은 내 웃는 얼굴에 박힌 이빨들과
정신병동에 갇힌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아름다운 이들을 한 없이 증오하는
그들의 목을 졸라 머리를 뜯어낼 내 길고 붉은 혓바닥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대답하길 바란다. 누구도 너에게 미치라고 하지 않았다고.
옳아, 내가 미칠 리가 없지. 광인이 광기를 선택하여 광인이 되었다는 건
명백한 논리모순이다.
그래, 수많은 정신병원 의사들이 내 손을 잡았었지
그들은 말했다. 장기적으로! 긍정적으로! 어려울 것이지만,
더 낫게! 더는 고통스럽지 않게! 마음을! 사람의 감정을!
영혼의 균형을! 채찍질은 그만! 손을 잡아요! 스스로 구제를!
어린아이의 눈물을! 성인이 되는 법을! 사상의 조율을!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자면 이제 경찰과 검사들은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정신병원 진료기록을 체크할 것이다 그리고 유전형질에서부터 스스로 고통스럽다 못해 증오를 품게 될 이들을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개방병동에서 격리병동으로 격리병동에서 독방으로 독방에서 형무소로 형무소에서 교수대로 교수대에서 이 세상 밖으로 그들을 이동시켜 마침내 완전무결한 사회를 만들었노라고 청결한 가위로 테이프를 끊고 서로 악수하며 웃고 카메라 앞에 설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그 뒤 우리는? 내가 품고 있는 것은 미래지향적인 것이다. 철저하게. 철저하게 미래지향적인 감정이다.
떨어지는 목들, 뭉개진 눈알, 크게 찢은 복부에 삽입되는 남근,
손톱 끝에서부터 어깨까지 잘게 썰린 고기와 뼈들, 정소를 절개해 꺼낸 정액들,
난소를 절개해 꺼낸 난자, 슬럿지 해머로 다져진 날고기, 혀가 제거된 남자들,
유방이 제거된 여자들, 창으로 벽에 꽂아놓은 고기인형들,
나이프로 벗겨 무두질도 하지 않고 창고에 처박아 놓은 가죽 컬렉션들,
뇌수가 있던 자리에 맴도는 윙윙거리는 날벌레 소리와 부화되는 알들,
자본주의가 들어찬 옆구리 살을 불에 굽는 냄새, 사회주의가 들어찬
두개골이 박살나는 소리,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었던 가죽주머니들이
좍좍 찢어져 안에 담고 있던 잡고기와 내장들을 쏟아내는 소리, 그 냄새,
드디어 나는 생살을 씹을 것이다. 내 치아들은 웃을 것이다.
마침내 나는 아침에도 웃을 것이다. 낮에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더는 술에 취해 울지도 않고 담배도 끊을 것이다.
더는 어머니를 미워하지도 아버지를 애닳아 하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그들도 날 이해하고 창고에 여기저기 흩어져있겠지.
내 유일한 피붙이 동생도, 내게 친절했던 사촌도, 내가 사랑했던 친가 가족들도,
내가 혐오했던 외가 가족들도, 내 몇 안 되는 사랑스런 친구들도,
매일 저녁 출근할 때마다 나에게 웃으며 인사했던 버스기사님도,
매일 술을 사러 가면 먼저 인사를 걸어왔던 마트 점장님도,
길가에서 스쳐지나갔던 모던하게 차려입은 아가씨들도,
멋지게 몸을 키워 자신만만하게 걷던 청년들도, 구청의 공무원들도,
길거리에 누운 노숙자와 거렁뱅이들도,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던 아주머니들도,
내게 한 없이 자상했던 스님들도, 어렸을 때 만났던 신부님들도,
예수님도, 하나님도, 부처님도, 알라도, 무함마드도, 성경도, 불경도, 쿠란도,
이제 막 태어난 신생아도, 죽음이 눈앞에 놓인 노인들도,
잘 생긴 이들도, 못 생긴 이들도, 젊은이들도, 중늙은이들도,
성자도 탕아도 부자도 빈민도 호모섹슈얼도 헤테로섹슈얼도 권력자도 피지배층도
전부 철저하게 분해되어 나의 세계에 피와 면도날을 증명할 것이다.
나는 손을 뻗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다 나는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처럼, 손가락이 나이프로 되어있다는 것은 죄가 아니다.
물론 그것이 죄라고 말할 사람들은 널려있지만, 곧 그렇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아스피린을 한통씩 삼키지도 않을 것이다. 쿠에티아핀푸마르, 바이코딘, 바르비투르산, 발리움, 디펜히드라민, 알프라졸람, 클로미프라민, 그 외 내가 알지도 못하는 수 많은 이름의 약들. 그것들을 나는 내다버리고도 멀쩡할 것이다.
아! 사악한 자여. 내가 아는 한, 세계는 나의 것이고
나의 세계는 아름다워질 준비를 하고 있다.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펼치는
이름 없는 어느 나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