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시

내 병질과 증오를 여기에 선포하네

Lim_ 2016. 4. 14. 06:54

내 병질과 증오를 여기에 선포하네



오,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젊음의 사람들이여

오, 단 한 번도 태양빛에 타들어간 적 없는

귀족 같은 손의 주인들이여

오, 양잿물로 감아 윤기가 도는

담흑색의 머리칼을 빗는 이들이여.


설마 내 혀가 그대들을 찬송하리.

아름다움과 목탄으로 치장한

그대들의 갈색 눈동자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나는 알고 있다.


설마 내 혀가 그대들을 찬송하리!

모멸과 하잘 것 없는 도도함과

멸시로 세상을 내려다보는―그 좁디좁은 세상만을!

고결한 모욕이 걸린 입 꼬리로 조소하는

그대들을 말이다.


내 묻건대, 단 한 번이라도 사막의 모래를 쥐어

그것이 쏟아져 내리며 태양과 소금의 성을 짓는 것을

단 한 번이라도 대양의 끝에서

이끼를 뒤집어 쓴 암초와 고고한 빙하 앞에

인간의 왜소함에 몸을 떨며 공포로 세계를 찬탄하는 것을

그대들의 닫힌 눈이 본 적이나 있는가.


우리는 참으로 이상한 종족이지

막 태어난 갓난아이를 우리가 왜 사랑스럽다고 하는지

그것을 고뇌해봐야 한다.

얼굴에 박힌 주름도

쌓여온 고통으로 쑥 들어간 눈도

고된 삶에 온통 못이 박혀버린 손도

없는 순진한 멍청이들을 왜 사랑스럽다 하는지!


세상 끝에 가본 일도 없이

화려한 옷을 입고 빛나는 구두를 신고

젊음을 자랑하며 대로의 한복판을 걷는 이들아.

애욕의 노예가 되어

언젠가 읽었던 값싼 로맨스 소설로 머리를 채우고,

부서진 우상의 조각들과 적개심 가득한

세계의 눈동자가 당신의 영혼으로

꽂혀 들어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하! 그대는 그저

자기 자신이 완벽한 원자결합을 지닌 탄소가 되기를

바라 마지않을 뿐이구나.


내가 사랑하는 것은 삶이요,

고로 내가 사랑하는 것은 젊음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것은 뼈에 구멍이 뚫려

절뚝거리는 다리요

내가 사랑하는 것은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괴리에

표정조차 보이지 않으려 두 손으로 가린 얼굴이요

내가 사랑하는 것은 시간에 늙고 썩어버려

한치 앞조차 보지 못하는 흐린 눈이요

내가 사랑하는 것은 광산에서의 영원한 곡괭이질에

나무껍질처럼 변해버린 인간의 손이라.


누군가가 그랬지, 너무나도 유명한 누군가가.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아아, 나 차라리 폭풍이 되오리다, 지진이 되오리다, 산사태가 되오리다.

전쟁이 되오리다. 기아가 되오리다. 폭동이 되오리다.

사람들의 머리 위를 목적도 없이 맴도는

너무나도 추상적이고 맹목적인

증오가, 분노가, 혐오가 되오리다.


그러니 내가 펜을 아니 들 수는 없었노라.

고개만 들면 하늘 위에

현대의 거대한 우상들이 포식의 아가리를 벌리고 있으니

나 심장이 으스러져도 펜을 쥐오리다.

언젠가 그것이 녹슨 도끼 되어

그대들의 목을 쩔꺽 하고 자를 테니

내 님들아, 어서어서 오시어

이 나무 받침대 위에 머리를 뉘이시라.


나 아무런 명분도 목표도 없이 녹슨 도끼 내리칠 터이니

내 더러운 손에 더 많은 피가 묻을 때마다

나 감격하여 마른 눈물샘에 눈물 차오르고

내 증오해 마지않는 내 님들 사랑스럽다 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