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시

월석(月石)

Lim_ 2014. 10. 4. 05:12
월석(月石)


바닥을 바라보면 어둠뿐이다.
이 땅에는 달이 내리지 않는다.
사내는 불행으로 기운 구두를 신고 걸었다. 달이 지지 않고
뜨는 땅을 찾아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붉은 건물들의 벽으로 빗방울이 떨어져 터져댔고
조각조각 난 시체들은 바닥에서 검게 번들거렸다.
그는 활과 화살을 가진 몇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자신들을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무얼 기다리고 있습니까? 사내는 모자를 벗으며
정중하게 물었다. 우리는 태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화살촉을 흔들어보였다.

사내는 그들의 얼굴이 희고 핏기가 없다는 사실에
몇 가지 의문과 수긍을 떠올리며 길을 걸었다.
도둑고양이들이 비를 피해 자동차 밑이나
담을 등진 곳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들 중 하나는
얼마 전에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담겨진 채 버려진
동족의 시체를 보았다. 그것은 이 행성 곳곳에서
항상 벌어지는 일의 일부분에 불과했으므로
야행성의 노란 눈들은 침묵하며 껌뻑거릴 뿐이었다.
분명 달이 뜨는 곳에서는 비극도 달빛을 받겠지.
사내가 젖은 손으로 젖은 돌들을 주웠다.

더 이상 지구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사내는 파란 핏줄이 하얗게 보이는 어둠 속에 서서
호주머니에 넣어뒀던 돌들의 냄새를 맡았다.
그것에서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잠들어버린 채
아직도 깨지 않는 이들이 짓밟아왔던 것들의 냄새가
값비싼 종이로 만들어진 책처럼 읽혀졌다. 희극. 희망.
그는 그것을 산과 계곡을 향해 던져댔다.
자연이 무슨 일을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원리라는 것은
사람들이 눈동자에 개편된 영혼을 빛낼 때부터
희미하고 물컹거리며 자주 흩어지는 것으로 변했다.
사내는 아직도 비가 내리는 땅 어딘가에서
모래를 그러쥐며, 허구의 존재들이 입김을 불어대는
대기의 아래 바닥에서 실체를 잃은 숫자들을 센다.

지평선 너머에서는 달이 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