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시

계절

Lim_ 2013. 1. 30. 03:23
계절


한여름 해변에 내리쬐는 황금의 땀방울 같은 태양빛을
우리는 잊어버린 지 너무 오래 되었어
내겐 아직도 작은 여름이 있지
녹슬고 망가져서 눈이 내리는
작은 여름이 피곤한 눈동자로
책상 위에 누워서 봄을 기다리고 있지

겨울은 거의 다 갔지만
난 괜찮을 거야
한동안 나는 겨울을 추억하며 살 거야
얼어붙은 바람이 내 안의 환영들을 침묵시키던 계절을
나는 흔들거리는 의자 위에서 몇 번이고 떠올릴 거야

봄이 오면 우리에게는 생명의 수액이 돌아
사랑을 예찬하며 교미의 노래를 부르겠지
왜냐하면 나의 뇌수는 싱싱한 풀과 같아서
하늘에 뿌리를 박고 비를 마시며 살거든

그러나 언젠가 여름이 올 거야
어쩌면 거센 폭풍과 비바람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도 모르지
그래서 우리는 더위를 먹어 제정신이 아닌 대기 속에서
알몸으로 비를 맞고 사나운 야수의 울음소리로 짖을 거야
왜냐하면 짐승들은 그래야하는 법이라고
우리의 어머니가 말했었으니까

활기가 도는 환영들은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서
춤추고 땅 위를 빙글빙글 돌며
내가 어디에 있는지 헛갈리게 만들 거야
그러면 나는 그들과 함께 탱고를 추거나
혹은 그들의 목을 하나씩 분질러
내가 아직 완전히 돌아버리지는 않았다고 으름장을 놓을 테지

우리는 계절의 싹을 먹으며 살아
가끔은 시들고 얼어버린 싹을
왜냐하면 우리의 피는 달의 인력에 닿아 출렁거리고
우리의 영혼은 죽은 자들이 밟고 다니는 대기를 숨 쉬거든

가을의 지평선 끝자락에는 늘 그가 웃으며 기다리고 있지
그는 우리에게 차고 마르는 생명을 주었고
짐승들과 함께 놀라고 가르쳤어

다시 겨울이 올 거야
그러니 나는 괜찮을 거야